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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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하느님의 종 정철상(丁哲祥)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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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05 ㅣ No.800

‘하느님의 종’ 정철상(丁哲祥) 순교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회장이 순교하기 앞서 맏아들 철상 카롤로에게 들려준 말이 있다.

 

“사람은 무릇 누가 일러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천주 계시는 줄을 아느니라. 비록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들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누구나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하느님, 이 괴로움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주소서’ 하고 빌지 않겠느냐. 또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가 요란하면, 자기가 지은 죄를 생각하고 무서워서 숨으려고 하느니, 만일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그런 마음을 가지겠느냐.”

 

“아버님께서 지으신 「주교요지」 마지막 부분에 ‘이제 천주교의 말을 들으니, 마땅히 행할 일이로되, 천천히 내년부터 시작하면 어떠하뇨?’라고 묻는 이가 있다시면서 대답하시기를, ‘그른 일은 버리고 옳은 노릇하기를, 어찌 지금은 못하고 내년을 기다리리오?’ 하고 답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자식이 부모를 섬기려함에, 어찌 오늘은 못하고 내일부터 하겠노라 하리오? 이제 천주께서 세상 사람의 공번된 부모가 되시니, 이미 부모 되시는 줄을 알고, 어찌 그 자리에서 섬기지 아니하리오? 이왕에 죄를 많이 짓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하루라도 죄를 더 짓다가 천주의 은혜를 받아 착한 공부를 하려 하느냐? 지금 하기 싫은 일을 어찌 내년에는 좋아하리오? 또, 내년이란 말은 실로 헛말이요, 하기 싫은 핑계이니, 어찌 내년인들 참으로 하려는 마음이 있으리오?”

 

요컨대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제때에 하라는 교훈이기도 했다. 철상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말씀과 모범으로 천주교 신앙을 익히고, 신자된 본분을 지키는 단련을 받았다. 선교사들의 기록을 토대로 샤를르 달레 신부가 쓴 「한국천주교회사」는 이런 가르침을 주고받은 모양을 ‘학교’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일러준다.

 

“그러한 학교에서 배웠으므로 그는 보이는 바른 진보를 이룩했고, 그의 출신으로 보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같이 보이는 명예를 업신여기고, 다만 한 가지 목적만을 세웠으니, 곧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영혼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는 일이었다.”

 

철상 카롤로가 스무 살쯤 되었을 때 1801년의 신유대박해가 일어났다.

 

우리는 흔히 죽는 순간에만 하느님께로 향해 잘 서있으면 구원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올바른 삶이 전제되지 않고서 어떻게 올바른 죽음이 올 수 있겠는가. 순교자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피흘려 죽은 행위가 아니라 그가 살았던 믿음의 삶이 어떠한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특별히 신유박해 순교자들은 성직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깨알을 씹듯 신심서적을 정독하면서 기도를 배우고, 믿음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살아냈으니, 이를 가리켜 ‘서양 선교사들의 사상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한국인의 영성’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순교자의 아들 철상 카롤로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하느님을 배우고 사랑을 살면서 자라났고, 천상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해서는 지상의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약종이 금부도사에게 붙잡혀 옥에 갇힌 것이 신유년 음력 정월 열하루 정오 무렵이었고, 뒤이어 약종의 중형 약전과 아우 약용이 투옥되었다. 철상은 아버지와 삼촌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옥 근처 밖에서 머물렀다.

 

“그래, 오늘도 시달렸겠구나.”

 

“소자가 시달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버님과 숙부님들께서 옥살이를 하시니 제 마음 찢어지는 듯 아픕니다.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늘도 신부님 계신 곳을 대라고 하더냐?”

 

“예, 저들이 와서 ‘중국인 신부 사정을 아는 대로 모두 알릴 것과, 신부 어디에 피신해 있는지 말하라’고 독촉하며, 그것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일러주고 갔습니다.”

 

“이 애비가 가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느니라. 행여 네 마음이 흔들릴까 걱정이구나.”

 

“꿋꿋이 잘 서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

 

“네 효행이 지극하니, 혹여 네 앞에서 이 애비가 혹독한 형벌을 받더라도, 또 네 삼촌들이 새로운 형벌을 당하더라도 네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되느니라. 알겠느냐?”

 

“네, 잘 알겠습니다.”

 

“신부님이나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말은 절대 삼가야 하느니라.”

 

한 달 남짓 옥바라지를 했을 때, 철상이 헐레벌떡 다가가 아버지께 아뢴다.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아버지, 다름이 아니오라, 두 분 숙부님들께서 천주님을 모른다고 고변하셨다고, 아니, 사학을 버리고 정도(正道)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다 하옵니다.”

 

철상의 아버지 약종은 옥중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보였다. 순조 원년 2월 25일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은 영부사 이병모가 대왕대비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고 적어놓았다.

 

“…정약전과 약용은 당초 사학에 오염되고 미혹되어 오랑캐와 금수의 지경에 빠졌을 때에 그들 역시 자복하였으니, 죄 범함을 논하였어도 애석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사학을 버리고 정도에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그의 입으로 변명하였을 뿐 아니라, 정약종에게서 적발한 문서 가운데 있던 사당(邪黨)의 서찰에 ‘너의 아우가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었고, 약종이 스스로 글줄 가운데 또, ‘형제와 함께 사학을 익일 수 없으니, 자기의 죄가 아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약전과 약용이 약종을 만류한 내용도 있었는데, 그가 뉘우치고 깨달은 자취는 거의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다른 여러 죄수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유배형을 시행하는 것이 관대한 은전에 해롭지 않을 것입니다.”

 

27일자 기록은 정약전에 대해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형벌을 감해주어 전라도 강진현 신지도로 정배했고,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현으로 정배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약용은 얼마 후 전라도 강진 초당으로 옮겨가서 모두 18년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약종의 경우는 달랐다.

 

“죄인은 단지 사술의 괴수일 뿐만 아니라, 국문하는 마당에서 엄중한 신문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완고하고 사납게 굴면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흉악한 역적을…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옵니다.”

 

이렇게 해서 형제들은 유배를 떠나고 약종은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죽어갔다. 2세기가 넘는 한국교회사 안에서 1백년을 헤아리는 오랜 박해시절을 통해 한 사람의 순교자 뒤에는 두세 사람의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 살아남은 쪽이 모두 ‘배교자’라고 단정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지만, 순교야말로 완전한 자기봉헌이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이 되시어 ‘자기 비움’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겸손을 닮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자아실현을 접으면서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는 현대인의 ‘백색 순교’ 역시 피흘림의 순교정신을 필요로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적에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생활한다. 그렇지만 순교자들은 달랐다.

 

“죄인 정약종이 이미 승복하였으므로, 사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하는 일을 각각 해당 관청에서 거행토록 함이 어떠하온지요?”

 

왕이 윤허하자 재산을 몰수해갔고, 노비들은 국가에 귀속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순교한 신유년 이월 스무엿샛날(양력 4월 8일), 아들 철상은 붙잡혀 형조에 끌려갔다.

 

“바른대로 아뢰어라. 그래야만 네가 살아날 수 있을 테니, 그 중국인 신부가 어디에 숨어 있느냐?”

 

“저는 모릅니다. 오직 한 가지 소원은 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주를 위해 죽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아직 너는 죽기가 일러. 또 젊고 어린 처자식을 생각해야지. 그러니 어서 천주학하는 사당을 고하거라.”

 

“인지상정으로 처자가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습니까마는, 이것 역시 천지만물의 근원이요 주인이신 천주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분 뜻에 따르겠습니다.”

 

한 달 남짓 옥에 갇혀있는 동안 철상 카롤로는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짚신을 삼아야 했고, 틈을 내어 교리를 익히며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했다.

 

“천주, 수난하여 죽으신 뜻이 지극히 선하시니, 천주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무궁무진하시어, 다시 더할 것이 없게 하려 하심이요, …또 당신이 이미 사람을 위해 죽기까지 하여 계시니, 사람도 천주를 위하여 죽기를 사양치 말라 하심이라.”

 

그에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느님께 두는 것이었다. 양력 5월 14일 사형집행일이 되자 그는 아버지가 순교했던 서소문 밖 형장으로 걸어 나가 망나니에게 기꺼이 이마를 내밀었다. 시신은 집안 식구들이 거두어 아버지의 육신과 함께 마재에 장사지냈다. 그가 남기고 간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마 후 하늘나라로 따라갔다. 정철상 카롤로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복청원자의 한 분으로서 ‘하느님의 종’이니, 그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피땀 흘려 기도하며 이르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아빠! 아버지!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2008년 2월 14일 사순 제2주일 ~ 2008년 5월 22일 부활 제5주일 의정부주보, 최홍준 파비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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