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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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베드로 파브르 신부 (4) 아무에게도 마음을 닫지 않은 사제, 주님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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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7 ㅣ No.1082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베드로 파브르 신부 (4 · 끝) 아무에게도 마음을 닫지 않은 사제, 주님 품에 안기다

 

 

파브르 신부는 젊은 예수회원들에게 계속해서 권고했다. “그들은 시험에 들고, 훈계를 듣고 …시련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오만하고 경멸적인 바리사이나 화가 나고 성급한 율법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지 경계합시다. 결국, 고해소를 떠나는 모든 고해자가 다시 자유롭게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파브르는 가는 곳마다 이런 겸손하고, 온유하고, 연민에 가득 찬 마음과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1542년 여름 파브르 신부는 슈파이어에서 「영적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그로 인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였다. 또 그날그날의 묵상들, 영신수련에 따른 영적인 움직임들을 기록하였다. 

 

파브르의 지향은 신자들을 위한 영성생활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으로 분열된 교회를 다시 하느님 안에서 일치와 통합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1542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에 기록된 그의 기도 목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들의 약점과는 상관없이 특별히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싶은 여덟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바오로 3세 교황 성하, 카를 5세 황제 폐하, 프랑수아 1세 프랑스 국왕, 헨리 8세 영국 국왕, 마르틴 루터, 술레이만 1세 오스만 튀르크 술탄, 마르틴 부처, 필리프 멜라히톤입니다. 사람들이 이들을 자주 가혹하게 판단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제 안에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이 여덟 명은 당시 교회와 세속 정치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파브르 신부의 태도는 일치와 통합에 있어서 단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으려는 복음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라이네스는 이단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파브르 신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파브르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만약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그들을 사랑으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진심 어린 마음과 행동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서 그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약화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하겠지요.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고 기꺼이 신뢰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선의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쟁이 될 만한 주제들은 피하고 대신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을 그들과 친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브르 신부는 바오로 3세 교황에게 트리엔트 공의회 교부로 임명받았다. 그는 1546년 봄에서야 그 임명장을 받았다. 그래서 파브르는 4월 20일 마드리드에서 출발해서 발렌시아로 향했다. 4월 29일 발렌시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5월 20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지만 삼일열 말라리아에 걸리고 만다. 3주 동안 병상에서 회복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미 배는 떠나 버렸다. 그는 이냐시오에게 편지를 써서 출발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했다. 6월 21일 파브르는 여전히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파브르의 건강이 많이 악화하면서, 그의 건강을 걱정한 친구들이 “여행을 취소하라”고 그에게 권고하였다. 이냐시오도 로마의 예수회원들과 상의한 후 “즉각 돌아오라”고 강력한 어조로 명령했다. 이에 파브르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순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7월 7일 파브르 신부가 탄 배는 제노바로 향하였다. 제노바에 도착하고 10일 후에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파브르 신부는 1539년 첫 사명을 받고 파르마로 떠난 지 7년 만에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로마에 돌아온 첫 주를 모든 사람과 함께 기뻐하며 서로를 방문하면서 보냈다. 7월 23일에는 라이네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트리엔트 공의회에 있는 고위 성직자들과 그들의 비서들에게 전달될 편지를 함께 동봉했다. 그것들은 스페인에서 부탁받은 것들이었다. “이 편지들을 내가 전해야 하는데 나는 로마의 더위가 누그러질 때까지 트리엔트로 출발하는 것을 연기하였기에 이것들을 잘 보관하였다가 확실히 전달하여 주기를 청하네.” 이것이 파브르가 쓴 마지막 편지였다. 

 

이틀 후인 7월 25일 파브르는 열병에 걸렸는데 갈수록 악화됐다.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임종을 준비했다. 7월 31일 토요일 그는 마지막 고해성사를 본 후 다음 날 아침 미사 때 마지막 성체를 모셨다.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풀려난 8월 1일 정오와 저녁 기도 사이에 공동체의 모든 회원과 많은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랑하는 파브르 신부님이 선종하셨다.” 

 

2014년 1월 3일 로마에 있는 제수 성당에서 거행된 파브르 성인 시성 감사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6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파브르 성인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인은 겸손하고 섬세한 사람으로서 삶의 내적 깊이가 있으며 어떤 부류의 사람과도 친구가 되는 재능을 선사 받은 사람입니다.”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문화적 다양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기적 개인주의로 살아가는 오늘날, 파브르 성인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닫지 않도록 조심하시오”라는 말씀이 생명의 물처럼 세상을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다주게 되기를 기도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25일, 김치헌 신부(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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