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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한국 신흥종교의 이해: 신흥종교와 가톨릭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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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04 ㅣ No.1073

[한국 신흥종교의 이해] 신흥종교와 가톨릭 신앙

 

 

최근 한국천주교회에서도 그릇된 종말론이나 이단 종파로 인한 폐해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고 있다. 일부 신자들이 이에 현혹되어 천주교 신앙에 회의를 품거나 이단 종파로 개종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로 인해 가족성원들 간에 갈등을 빚거나 심지어는 가정마저 깨어지는 사례들도 일어나고 있다.

 

이에 교회에서는 2017년 2월 전국 차원에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몇몇 교구에서는 교구 차원에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단 종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은 급속한 변혁기나 혼란 상황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조선말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일제의 압제와 수탈이 극심하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참화를 불러일으켰던 6.25전쟁 직후에,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신흥종교들이 대거 등장하여왔다.

 

이러한 상항에서는 급속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신흥종교는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확산한다. 그동안 신흥종교가 ‘민중종교’라고 불려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흥종교는 분명 혼란스럽거나 ‘병든 사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흥종교의 발생을 전적으로 사회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기성종교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것은 신흥종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기성종교를 다닌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성종교가 소외되거나 상처 받거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주었다면, 그리고 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면, 자신이 신앙하던 종교를 버리고 남들로부터 ‘이단’이나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라고 비난을 받는 신흥종교로 굳이 개종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든 사회’의 산물이나 기성종교와 당사자의 책임도 적지 않아

 

신흥종교들은 기존 사회를 ‘병든 사회’ 또는 ‘낡은 사회’라고 비판한다. 또한 그들은 기성종교가 이러한 사회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신흥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신흥종교의 이러한 주장이 일부 사람들에게나마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신흥종교의 발생과 확산에는 사회와 기성종교의 책임이 적지 않다. 신흥종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안은 이러한 인식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다고 하여 신흥종교의 등장과 확산을 사회와 기성종교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신흥종교를 믿고 따르는 당사자의 책임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신이 지녔던 신앙을 포기하고 신흥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한 확신과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이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흥종교를 믿음으로써 재산과 이웃과 가정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삶 전체가 파멸되는 것에는 무엇보다도 당사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앙이란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적인 것에 관한 믿음과 행동이다. 그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쉽게 파악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올바른 믿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굳은 확신과 함께, 자신이 믿는 것에 관한 이성적 지식과 판단이 필요하다.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적인 대상을 사물을 분석하듯이 이성적인 잣대로만 파악하려는 자세로는 신앙심이 자랄 수 없다. 그러한 자세로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길이나 돌밭 또는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처럼 열매를 맺기 어렵다(마태 13, 3-9).

 

또한 열광적인 분위기만 쫒는 자세도 올바른 신앙을 해칠 수 있다. 건전한 신앙을 위해서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 서문).

 

확고한 신앙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으로부터 오는 은총에 대한 체험이 필요하다. 이러한 체험은 강렬한 신앙을 갖게 한다. 이러한 체험은 일상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기도와 성사 그리고 전례에 대한 참례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신심단체와 봉사단체에서의 활동도 신앙 체험과 함께 신자로서의 자의식(自意識)과 신자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줌으로써 신앙상의 위기나 각종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신자들 간의 강한 결속력은 신흥종교의 도전과 같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앙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건전한 신앙을 위해서는 신앙의 바탕인 성경과 교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성적 토대가 없는 신앙은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천주교신자들이 성경의 배경이나 문맥은 배제한 채 성경구절들을 꿰맞추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이단 종파들의 전도방식에 쉽게 휘말린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회심자들의 효과적인 재적응 도와야

 

한편, 최근에는 이단 종파에 휘말렸다가 회심하는 신자들의 재적응 문제도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단 종파나 신흥종교로 입교했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졌던 철저한 교육 훈련과 집단생활 그리고 체험 등으로 인해 본래의 신앙으로 되돌아오더라도 재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의 상당수는 신흥종교의 독특한 수련방식과 집단생활을 통해 천주교에서 갖지 못했던 나름대로의 체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체험들로 인해 신흥종교를 쉽게 떠나지 못하며, 회심했다고 하더라도 재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통일교를 비롯하여 신흥종교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그곳에서 받았던 지식과 체험들을 씻어내도록 돕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시행하여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그러한 것의 대부분이 실패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회심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곳에서 받은 훈련과 체험을 토대로 기성교회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며, 따라서 본래의 신앙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심자들의 재적응을 위해서는 교리에 대한 철저한 재교육이나 친밀한 친교를 통한 신자공동체와의 결합뿐 아니라 영적 체험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성령세미나, 숙련된 지도자의 인도에 따른 성체조배 그리고 여러 수도회에서 개발한 영성 프로그램들을 통해 영적 체험을 얻게 될 때 신흥종교에서 얻었던 체험들은 상대화되면서 올바른 영적 체험에 대한 구별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신흥종교에서 얻은 체험들이 극복되면서 신앙생활에 대한 재적응이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회심자들은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 신비체의 형제자매들이다. 이들의 재적응을 위해서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들을 따뜻이 품어주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들이 지난 일들을 털어내고 ‘아버지의 집’(루카, 15,11-24)에 돌아와 적응하면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노길명 요한 세례자(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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