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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고성운 요셉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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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08 ㅣ No.1304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순교로 꽃피운 형제애


고성운 요셉(?-1816)의 순교 이야기



형제간에 우애 있는 집안을 보면 참 부럽다. 부모를 서로 돌보려 하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챙기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은 하느님이 주신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때 부모로서도 자식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이런 저런 일로 형제간에 불편한 마음이 생길 때 순교자 고성운 요셉의 삶을 돌아보면 어떨까.

고성운 요셉은 고성대 베드로와 형제간으로, 충청도 덕산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하느님을 알았다. 그는 본래 성격이 착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신앙생활도 아주 열심이었다. 그는 효성도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그의 형 베드로와 함께 8개월 동안 병수발을 들며 기도하였다. 그들 형제는 언제나 합심하여 영적독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는 데 열심이었으므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형 베드로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목숨을 보존하려 배교하여 돌아왔다가 뉘우치자, 두 형제는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 후 경상도 청송 노래산으로 거처를 옮겨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15년 부활대축일 때 체포되었다. 포졸들이 들이 닥쳤을 때 처음엔 도적들이 온 줄 알았다. 몸이 날쌔고 기운이 아주 센 요셉의 지휘에 따라 그들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이내 도적이 아니라 포졸들임을 알게 되었다. 교우들은 저항을 멈추었고 요셉은 어린 양처럼 양순하게 맨 먼저 순순히 포승을 받았다. 경주진영을 거쳐 대구감영에 이르도록 문초를 겪을 때마다 두 형제는 한결같았다.

힘든 인생길에서 형제지간에 함께 하느님 안에서 힘이 되어 주며 사는 것보다 더 큰 인간적 위로가 또 있으랴. 두 형제가 혹독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함께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 조정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형은 사악하고 아우는 요사하여 서로 그 사악함을 도와주었습니다.” 17개월의 옥살이를 마감하고 참수형을 당할 때까지 요셉도 형과 같이 동정으로 살아왔다. 참수 직전 망나니에게 ‘내 머리를 단번에 자르도록 하라’고 이를 정도로 순교에 대한 그의 확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순교자 고성운 요셉님! 하느님 안에서 순교로 꽃피운 형제애를 저희도 닮을 수 있도록 주님께 전구해 주소서.

[2014년 7월 6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대구주보 3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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