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
(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김시우 알렉시오의 순교 이야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6 ㅣ No.1287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탁월한 용덕, 장애를 봉헌한 신앙


김시우 알렉시오(1782-1815)의 순교 이야기



요즘 안팎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핑계 삼아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용기를 내고 싶지만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 때 자신의 장애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신앙을 불태운 순교자 김시우 알렉시오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불구라고 잡아가지를 않는군요. 그래서 우는 겁니다.” 진보 머루산 교우촌에 포졸들이 쳐들어와 교우들을 체포하고 자신은 붙잡지 않자 김시우 알렉시오가 울면서 한 말이다. 포졸들이 그가 원하는 대로 체포하자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포졸들을 따라갔다.

안동 관아에서 받은 갖은 형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굳건한 신심은 형리들도 놀랄 정도였다. 그는 박해자들에게 오히려 교리를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대구로 압송된 후에도 그는 감사 앞에서 문초를 받으면서도 우(禹)임금의 선정(善政)을 비유로 들어 예수님은 우리 육신 뿐 아니라 영혼까지 돌보는 분이심을 설명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수난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감사께서도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그분을 흠숭하고,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그러자 분노에 찬 감사는 김시우 알렉시오의 턱을 으깨어 부수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한 후 사형 선고를 내렸다. 동정으로 살면서 반신불구의 장애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한 김시우 알렉시오, 그의 뛰어난 재능과 변론과 탁월한 용덕은 오랫동안 조선 교우들 사이에 전해졌으며, 모든 신자들이 그를 교회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충청도 청양의 양반가문에 태어나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반신불수인 탓에 일하기가 어려워 가난하게 살았지만, 옥중 생활 전까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우들을 가르치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왼손으로 교회 서적을 필사하여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다른 교우들보다 넓고 깊은 교리 지식으로 열정과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하다가 1815년 33세의 나이로 옥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자 김시우 알렉시오님! 이런 저런 이유로 저희 신앙이 나약해질 때 마다 다시 주님께 대한 열정이 타오르게 기도해 주소서.

[2014년 6월 1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90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