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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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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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6 ㅣ No.1286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빠른 회심의 은총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1815)의 순교 이야기



잘못한 줄 뻔히 알면서도 뉘우치기가 힘들어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은가? 용서를 청하겠다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그런 때 순교자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에게 전구를 청해보면 어떨까?

그녀는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대구감영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던 중에 잠시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고 풀려나게 되었다. 그녀가 막 감영의 문을 나가려고 할 때, 마침 안동에서 이송되어 온 김종한 안드레아를 만나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권면 받았고,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신앙심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감영으로 들어간 그녀는 배교를 큰 소리로 취소하면서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아까는 혹형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하느님을 배반하였지만, 이것은 크나큰 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관장님 앞으로 온 것입니다. 원하시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한 신자입니다.” 그렇게 다시 신앙을 증거하자 관장은 화가 나서 심하게 매질을 하도록 하였다. 살점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고 얼마 되지 않아 뼈가 허옇게 드러났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옥으로 끌려갔는데 오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난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는 고향 인근에 전파된 복음을 듣고 입교하였으며, 1815년 2월 부활대축일을 지내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갖은 고초를 겪다가 같은 해 4월말에서 5월초에 대구감영에서 옥사하였으며 대구지역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님, 저희도 당신처럼 빠른 회심의 은총이 임하도록 주님께 빌어주소서!

[2014년 5월 25일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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