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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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조용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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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4 ㅣ No.1284

[124위 시복 특집] 조용삼 베드로(?~1801년)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하여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용삼 베드로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가난한 조용삼 부자는 여주에 사는 임희영의 집에 기거하면서 천주교를 접한 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조용삼이 아직 예비 신자일 때 박해가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끌려가는 중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니 틀림없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조용삼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감히 순교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관장 앞에 끌려간 아버지는 첫 번 신문에 결심이 무너져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기세가 오른 관장이 “너도 배교하라.”하니 조용삼은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아니, 네 아비가 목숨을 보전하려 하는데 너는 죽기를 원한단 말이냐. 그것은 효도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라고 하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부모보다 먼저, 또 부모 위에 천지만물의 대왕이자 공통된 아버지께서 계십니다. 그분이 제 부모에게 생명을 주셨고 제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성이 난 관장은 혹독한 고문과 신문을 거듭했고 조용삼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않자 관장은 조용삼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버지에게 매질을 가하며, 배교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겁박하였습니다. 조용삼은 굴복하여 소리쳤습니다. “저로 인해 아버지가 죽는 것은 볼 수 없으니 우리 둘 다 살려 주십시오.” 관장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들을 석방했습니다. 훗날 참수당한 이중배가 관아에서 풀려나는 조용삼을 보고, 그의 나약함을 책망하며 어서 통회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조용삼은 그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나서 이튿날 아침 관장 앞에 나아가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후 조용삼은 어떠한 형벌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신유박해가 일어나 곳곳에서 신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고, 그 무렵 옥중에서 세례를 받은 조용삼은 착한 행동과 아름다운 말로 여러 신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나 약해진 그의 몸은 더 이상 형벌을 감당할 수 없어, 마침내 1801년 3월 27일 옥사했습니다. 마지막 형벌 때에 그는 박해자들을 향해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하여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6월 8일 성령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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