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330.....사순4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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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3-29 ㅣ No.1496

 

사순 4 주일(가해)

1사무엘 16.1.6-7.10-13ㄱ       에페 5,8-14       요한 9.1-41

2014. 3. 30. 등촌3

주제 : 사람이 (눈으로) 본다는 것

세상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는 백문(百聞),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낱말의 뜻은 사람이 귀로 100번을 듣는 것의 효과보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의 힘을 더 크게 보고 강조하는 표현입입니다. 이 말대로 생각한다면, 사람이 귀로 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증언이 될 수 있는 방법인데, 그렇게 귀로 대하는 듣는 일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더 강조하는 이 일이 우리 삶에 남기는 영향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는 본보기를 전합니다. 사무엘예언자의 이름을 빌린 이야기에는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임금을 선택하는 일에 예언자조차도 눈으로 보는 것을 하느님도 중요하게 여기실 거(!)’라고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이야기가 나왔고, 긴 말씀을 짧게 읽은 요한복음에는, 안식일에 눈먼 이를 보게 주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하느님의 힘을 세상에 실현하는 분으로 대하지도 않은 고집이 센 사람들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람이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는 일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많은 기관들 가운데 한 가지인 눈이 작용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최고의 중요성이나 완벽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인 중요성이 있음을 전제로 알아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상대적인 중요성이라는 말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표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강조한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보는 것을 100번 강조하는 것보다 한번 제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힘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었던, 사울이 하느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보다는 인간인 자기의 뜻을 더 앞세운 결과는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뜻을 더 앞세우고 살았던 사울임금의 모습을 보고, 사무엘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임금을 찾기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갔으면서도 거기에서 다윗이라는 소년을 만나기 전, ‘다윗의 형, 엘리압의 겉모습,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하느님께서 인간의 방식대로 행동하신다는 섣부른 판단을 합니다. 독서를 들은 우리는 이 일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압니다. 다만, 세상에 사는 우리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을 대하면서 어떻게 판단하는 기준으로 그 존재들을 대하는지 살펴야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에 있는 기관들 중에 한가지인, 눈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크게 보았던, 사무엘예언자를 향하여 하느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본다는 하느님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이 말씀의 뜻을 알기는 어렵지만, 섣부르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일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삶에 대해서 신중할 것을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요한복음을 통해서 들은 태생소경을 고친 이야기에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그 내용을 살필 순서입니다. 안식일에 소경이었던 사람을 볼 수 있도록 고쳐준 예수님의 행동은 졸지에 죄인의 행동이 되었고,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담지도 않은 인간의 생각으로만 움직인 일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아주 좁은 공간에 가두는 사람들이 되었고, 하느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뜻이 더 뛰어나고 인간의 행동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이 어느 날엔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 당신은 세상에 대해서 당신이 갖고 있는 뜻을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알려주신다면, 제가 당신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할 사람이 될 텐데요!”하고 주장하면, 하느님은 그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사순4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태생소경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의 선언에 따라 눈을 뜨게 된 사람의 얘기를 들었고, 지난3주일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신앙인이 된 사마리아여인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순2주일에는 사순시기 다음에 다가올 하느님이 드러내실 영광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첫 번째 주일에는 우리 삶을 힘겹게 할 수도 있는 유혹을 올바로 대하는 자세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방법을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설명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가질 자세는 어느 것이든 한 가지 선택입니다.

 

하느님은 나더러 무엇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다리시겠습니까? 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하느님께서는 나를 파견하신 적도 없다고 말하고, 그 하느님은 세상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의 삶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섣불리 결정하고 행동을 해도 좋은 일일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빛 속에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산다면, 선과 의로움과 진실을 담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실제는 내가 손을 뻗으면 닿고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드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사순4주일, 눈으로 보기는 하되,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대할 것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면 좋겠습니다.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들은 오늘,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힘이 우리 안에 갖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청원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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