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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103위의 성인인가, 103명의 성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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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66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103위의 성인인가, 103명의 성인인가?

 

 

우리나라 교회사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는 순교 전통을 들고 있다. 우리 교회사에 등장하는 2천여 명의 순교자들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 가운데 103명이 성인이 되셨다. 교회는 9월 20일을 축일로 정하여, 가톨릭 교회의 전례를 거행하는 지구상의 모든 이가 한국 성인들이 보여주었던 용감한 신앙의 증언을 해마다 기억한다. 그런데 그 한국 성인들의 숫자를 지칭하는 단어를 ‘위(位)’나 ‘명(名)’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는 본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사람을 세는 단위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말이 있다. 고대 로마인, 유럽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우리 주변에는 시노-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도 있다. 그런데 한국어나 중국어에서는 인도-유럽어족과는 달리 양수사(量數詞)가 발달해 있다.

 

양수사는 사람의 수효나 물건의 분량의 단위를 나타내는 낱말들을 말한다. ‘103명의 성인’, ‘103위의 성인’이라 할 때 ‘명’이나 ‘위’라는 낱말이 양수사이다. 품사론에서 볼 때, 양수사는 수사(數詞)의 일종으로 ‘명수사(名數詞)’ 또는 ‘셈낱씨’라고도 한다. 이를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명사 또는 불완전명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기록을 보면 물건의 종류에 따라서 그것을 세는 낱말들이 각각 달랐다. 말을 셀 때에는 ‘필’이란 단어를, 소와 같이 비교적 큰 짐승들은 ‘두’라는 말로 그 숫자를 헤아렸다. 닭과 같은 날짐승은 ‘수’란 단어를, 물고기는 ‘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들 동물을 나타내는 양수사는 대개 ‘마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 ‘마리’라는 단어는 예전에 사용하던 ‘수’나 ‘두’를 나타내는 ‘머리’의 옛말이다.

 

한편, 우리의 전근대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사람의 숫자를 헤아릴 때에도 그 신분제적 차별의식이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 선조들은 관원이나 양반 사족들을 나타내려고 ‘원(員)’이라는 양수사를 썼다. 그리고 일반 양인은 ‘인(人)’이라는 단어로 그 수효를 헤아렸다. 신분이 노비나 백정과 같은 천인은 ‘구(口)’라는 단위로 숫자를 표시했다. 이처럼 전통시대에는 양수사 자체가 신분을 반영하고 있었다. 당시에 ‘명(名)’이라는 양수사는 사용한 용례가 매우 드물었다. 그러다가 ‘명’이라는 단어는 신분제를 극복한 근대사회에 이르러 널리 쓰이게 되었다.

 

 

‘위(位)’라는 낱말의 뜻

 

오늘날 사람을 세는 단위로는 ‘명’이란 단어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103위 한국성인’ 등의 표기에서 볼 수 있듯이 ‘위(位)’라고 하는 장엄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위’라는 단어의 뜻과 그 사용된 용례들을 좀더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는 우리의 순교 성인들을 나타내는 정확한 양수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따져보려는 작업이다. 또 한국 성인에 대한 올바른 양수사를 씀으로써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가다듬을 수도 있다.

 

‘위’라는 낱말은 한문에서 왔다. 그러므로 그 정확한 뜻을 알려면 한문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왕이면 정평이 있는 한문사전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일본인 학자 ‘모로하시’의 「대한화사전」을 뒤져야 한다. 이 사전에서는 ‘위’에 대한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로 “수(數)를 표시하는 경어 ; 이인(二人)을 양위(兩位)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사전에서는 중국 고전에서 가려 뽑은 이러한 용례도 소개하고 있다.

 

한편, 1853년 홍콩에서 간행된 한문-라틴어 사전인 「한양자전」에서는 ‘위’를 “존귀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수사(數詞)”로 보고 있다. 그리고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이 1880년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간행한 「한불자전」에서는 ‘위’라는 단어를 “사람의 수효를 나타내는 경어”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을 보면 19세기 후반까지 이 단어는 분명 사람의 숫자를 나타내는 존칭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은 우리 나라 순교자들이 시복되었던 1925년까지도 통용되고 있었으므로 ‘조선 순교복자 79위’라는 용어가 당시의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위’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알려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사전들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사전으로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1999년에 완간한 50여 만 어휘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위’라는 단어를 “신주, 또는 위패로 모신 신을 세는 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현기영이 지은 「순이 삼촌」이란 소설에서는 “5백 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경우에서처럼 ‘위’라는 단어는 신주나 귀신을 헤아리는 단위였다. 우리의 전통에서는 조상신이나 귀신을 높여 부르려고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서 ‘위’라는 단어는 죽은 귀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이를 이 사전의 말풀이는 반영해 주고 있다.

 

한편, 1982년에 간행되어 23만 단어가 수록된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서도 ‘위’는 “죽은 이의 신주 또는 위패에 모신 신의 수효를 셀 때에 쓰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1992년에 33만 단어를 수록한 「조선말대사전」을 간행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위’를 “이름 수의 한 단위”로만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현대 한국어에서 ‘위’라는 단어는 조상신이나 귀신의 숫자를 헤아리는 양수사이다.

 

 

남은 말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1984년에 시성되지 못했던 다른 순교자 가운데 124명의 순교자를 가려 뽑아 2명의 증거자와 함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흔히 ‘103위 순교성인’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및 주문모 신부’의 시복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도 ‘124위’라는 용어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1925년 ‘조선 순교복자 79위’가 탄생한 이후에 적어도 세 차례에 걸쳐서 교회용어 개정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순교자의 숫자를 나타내는 단위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해 왔던 ‘위’라는 단어는 전근대적 관행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순교자들이 거부했던 조상신 내지 위패를 헤아리는 단위였다. 무엇보다도 이 단어는 케케묵은 옛날을 연상시켜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라는 단어를 오늘날 모든 사람이 쉽게 알아듣는 ‘명’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할 터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 순교자들을 친근한 형제로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손들이 그들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순교자들을 아무 스스럼없이 만나게 되어야 한다.

 

[경향잡지, 2002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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