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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사랑의 길은 사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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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10 ㅣ No.1091

사랑의 길은 사도의 길

 

 

우리는 2014년부터 ‘신앙의 5개년 계획’에 따라 ‘하느님 말씀’으로 우리에게 심겨진 신앙의 씨앗을 ‘기도’로 성장시키고, ‘가톨릭 교회 교리’를 통해 굳건하게 하였으며, ‘미사(성찬례)’를 통해 예수님의 성심을 배우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주님을 찬미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올해에는 우리 안에 심겨진 신앙이 자라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를 보내려고 합니다.

 

이 여정은 우리의 삶을 주님께 내어 맡김으로써,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참다운 제자’로 성장시켜 주시는 양성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5개년 계획의 마지막인 올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당신께서 주신 새 계명에 따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우리를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충실한 일꾼이자 당신의 사도로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자신과 세상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의 삶은 구원을 위한 길이며, 은총의 길입니다. 사도란 ‘스승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사로잡힌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참다운 사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머물러야 합니다. 마치 나무가 뿌리를 통해 수액을 공급받고 생기를 얻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에 앞서 내적인 수액을 불어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머문다면,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을 긷듯 우리 안에서 사랑이 넘쳐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넘쳐흐르는 사랑은 이웃에게로 흘러가 그들을 위한 구원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이웃 사랑의 현장으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 안에서 역동적으로 일하시고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웃 안에 있는 하느님께 감사와 사랑을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의 참된 의미이자, 우리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결국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사도의 길’입니다. 이 구원을 위한 ‘사랑의 길’이자 ‘사도의 길’을 충실히 걷기 위해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고 닮아, 그분의 뒤를 따르는 참다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다운 제자의 삶은 “성령의 인도로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는 것”(<사목 헌장> 3항)입니다. 즉, 참다운 제자는 ‘지금, 여기’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참다운 사도로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표징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상징인 ‘구유’, ‘십자가’와 ‘감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입니다.

 

 

구유

 

육화(肉化)의 상징인 ‘구유’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일치’를 드러냅니다. 참하느님이신 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 병든 이, 죄지은 이와 소외된 이의 벗(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이 되어 주셨습니다. 친히 그들을 찾아가시어 그들의 삶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육화 사건’을 체험하는 구원의 장이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소외된 이들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십자가

 

‘십자가’의 상징은 구원(부활)을 위한 ‘인내’와 ‘희생’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무죄하신 분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모든 고통과 죽음까지도 참아 받으셨고, 친히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도 구원의 희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수많은 어려움, 때로는 고통까지도 인내하고 희생함으로써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산모가 아이를 낳듯, 우리 안에 담겨진 하느님의 사랑을 낳게 되는 산고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해 ‘사랑’이라는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감실

 

‘감실’의 상징은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모든 것, 즉 살과 피를 구원의 양식으로 내어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온 삶을 인간을 위해 내어놓으셨고, 오늘도 매일의 성찬례에서 성체와 성혈로 우리에게 먹히심으로써, 우리와 온전히 일치하시고, 참된 구원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 우리가 가진 것, 즉 시간, 재화, 재능 등을 이웃들과 나누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맛있는 빵’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다면, 그들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내는 복음의 사도들은 이렇게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됩니다.

 

우리는 올 한 해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 ‘자선’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이웃을 돕는 것도 포함합니다. “용서해 주고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충고하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행위는 ‘영적인 자선 활동’입니다. 육체적인 자선 활동은 특히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잃은 사람을 묵게 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고,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형제애의 주요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7항) 왜냐하면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님,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는 빛이시니,

이 가난한 영혼에 한 가닥 빛살을 보내 주시어,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복자 슈브리에 신부의 기도 中)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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