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7) 13세기 ⑤ 평신도 그리스도인 영성 운동

‘왜곡된 영성 운동’ 이단으로 단죄

- 중세 후반 일어났던 평신도 그리스도 운동 중 일부는 이단적 가르침의 영향을 받거나 기존 가르침을 과도하게 해석해 교회로부터 단죄되기도 했다. 사진은 석상의 손 그림자가 왜곡돼 벽에 드리워진 모습. [CNS 자료사진]

중세 서방 교회는 수도회와 수도자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중세 후반에 일어났던 평신도 그리스도인 운동들이 영성생활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했던 영성 운동은 이단으로 단죄되기도 했습니다.

범신론의 오류에 빠진 자유 정신의 형제회

평신도 그리스도인 운동들 중에 하나로 ‘자유 정신의 형제회(Brethren of the Free Spirit)’ 또는 ‘자유 정신의 형제 자매회(Brothers and Sisters of Free Spirit)’로 불린 운동이 있었습니다. 자유 정신의 형제회의 기원은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가설은 시토회 수도원장이었던 피오레의 요아킴(Ioachim Florensis, 1130/35~1202)과 파리 신학자였던 벤느의 아말리쿠스(Amalricus de Bne, 1150쯤~1207)의 이단적인 가르침에서 유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두 인물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단죄했습니다. 요아킴은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왜곡했으며, 아말리쿠스는 범신론적이며 도덕률 폐기론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공의회의 결정이 나오기도 전인 1209년쯤 아말리쿠스를 추종하던 ‘아말릭파(Amalricians)’ 일부는 파리에서 화형을 당하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자유 정신의 형제회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지지받는 가설은 역시 13세기 초부터 나타났던 프로클루스(Proclus, 412~485)와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Ioannes Scotus Eriugena, 810쯤~877/80)의 신플라톤 사상을 추종하던 자들에게서 기원을 찾습니다. 그들이 자유 정신의 형제회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분방한 생각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든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만물도 창조주와 같아질 수 있으며, 인간도 하느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범신론적인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사실 13세기 전후로 서방 교회는 카타리파, 발덴서파 등의 이단이 창궐하면서 여러 가지 혼돈의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내 십자군 출정과 종교재판소 설치는 교회 내에 분열과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유 정신의 형제회의 가르침은 15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6세기 독일에서 출현한 ‘재세례파(Anabaptists)’ 교리의 기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평신도 그리스도인 운동은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이 이단에 빠지게 하는 위험을 제공했습니다.

준(準) 수도 생활을 실천한 베긴회와 베가르드회

1170년대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 ‘베긴회(Bguines)’라 불리는 여성 평신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군 원정대 때문에 12~13세기에 유럽 사회는 남성보다 여성의 인구수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과부들과 소녀 고아들 및 처녀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신앙을 보호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공동체를 준(準)수도원 체제로 운영했습니다. 즉, 베긴회 회원들은 수도 서약을 하지 않았고, 원하는 사람이면 아무나 공동체에 입회할 수 있었으며 아무 때나 자유롭게 공동체를 탈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베긴회 회원들은 시토회나 프레몽트레회의 수도 규칙과 같은 관례를 만들어 준수하면서, 기도생활과 공동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베긴회는 때로는 ‘거룩한 부인들(mulieres sanctae)’, ‘동정을 지키는 동정녀들(virgines continentes)’, ‘하느님 사랑을 받는 딸들(dilectae Deo filiae)’ 등으로 불리며 수도자와 같은 관상생활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거나 궁핍한 사람들도 도와주는 사회 활동에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습니다. 게다가 프랑스 지역 의전 수도회 출신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비트리의 자크(Jacques de Vitry, 1160/70~1240)는 121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PP. III, 재임 1216~1227)에게 벨기에 리에주(Lige)에 베긴회의 거룩한 삶을 소개하고 교황에게서 구두로 벨기에, 프랑스, 독일 지역에 베긴회를 설립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베네룩스 3국에서부터 자리 잡은 베긴회는 13세기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수많은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내에 이단 척결을 위해 나섰던 십자군 설교가들은 베긴회 회원들의 활동이 알비파를 비롯한 이단 운동을 막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베가르드회(Bghards)’라고 불리는 남성 평신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설립되었습니다. 주로 노동자들로 구성된 베가르드회 회원들은 사도적인 삶을 실천하면서 공동 소유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베가르드회는 널리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이단의 오류에 빠진 일부 베긴회

13세기 말엽 독일 지역 베긴회와 베가르드회 일부 공동체가 이단적인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인간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완전무결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든지, 단식과 기도생활 및 세례와 성체성사가 완덕에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유 정신의 형제회와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그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1227년과 1310년 트리어 교회 회의 및 1259년과 1310년 마인츠 교회 회의에서 베긴회와 베가르드회는 이단으로 의심받았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PP. V, 재임 1305~1314)도 1311년 비엔 공의회에서 독일에 베긴회와 베가르드회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교횡 칙서를 통해 그들을 단죄했습니다.

1318년 교황 요한 22세(Ioannes PP. XXII, 재임 1316~1334)는 교황 칙서를 통해 이단에 물들지 않은 올바른 베긴회와 베가르드회가 유럽 내에 여전히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쇠퇴해 갔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병자 간호를 실천하는 베긴회 회원이 약간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가렐리(Gherardo Segarelli, 1240~1300)가 1260년쯤에 시작한 ‘사도 형제회(Apostolici)’, 사도 형제회 추종자들이 돌치노(Dolcino da Novara, 1250~1307)를 중심으로 1300년 설립한 ‘돌치노파(Dolciniani)’, 안젤로(Angelo da Clareno, 1247/48~1337)가 1270년쯤 설립한 ‘프라티첼리(Fraticelli)’, 올리비(Petrus Joannis Olivi, 1248~1298)가 이끌었던 ‘영성파 형제들(Spirituales)’은 프란치스코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인물들이 아시시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ensis, 1182~1226)의 규칙을 과도하게 해석해서 엄격하게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교회로부터 단죄되었습니다. 중세 말엽 서방 교회는 영적 발전을 위하여 역설적으로 혼돈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월 7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