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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시복 결정 동정부부의 순교의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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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1329

시복 결정 동정부부의 순교의 의미와 가치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하느님의 종 124위 순교자들이 복자로 선포될 예정이다. 그들 가운데 유독 관심을 끄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모든 조선 순교자들 중의 진주’라고 불리는 전주 초남이의 동정부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이다. 우선 그들의 호칭에서 드러나듯이 동정부부라는 특이한 삶의 방식이 남들과 두드러지게 구별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 사실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젊은 남녀가 신앙이라는 이유로 함께 동정을 지키다 순교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범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형태는 박해와 같은 특수한 환경 속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취하게 되는 섭리적인 삶이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장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기념하고 기리는 것은 이들의 진가가 단순히 혼자 지키기도 어려운 동정의 삶을 함께 살면서 지켜냈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삶 전반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동정의 출발점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동정부부를 생각할 때 함께 동정을 지키기 위해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던 동정남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를 그들 성덕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처럼 간주하기도 한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혼기가 되면 양가 어른이 맺어 주는 짝을 만나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였다. 이처럼 인간사의 지극히 정상적인 기쁨을 충분히 누릴 여건을 갖춘 이들이 왜 자진해서 이를 포기했었고 죽음까지 각오하였던 것일까? 그 출발점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바로 그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다는 확신 자체가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 받았던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뿌듯한 확신을 지녔고 세례 때 모시게 된 성체 성사의 은총으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믿음을 지녔다. 그런 전부이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하도 커져서 자신들의 존재 모두를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갈망 자체가 그들로 하여금 동정의 삶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였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내놓는 것 이상으로 높은 충성과 헌신의 표현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추상적이지 않고 살아 있었기에 삶의 다양한 순간들, 특히 고난과 잔인했던 순교의 순간에도 모든 것을 의탁하면서 오히려 평안함을 맛보기도 하였다. 이들처럼 모든 일이 영광이고 은총이고 기쁨이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늘 감사한 사람은 없었다.


동정의 본질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것

특히 요즘처럼 정결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뭔가 어려운 수덕적인 가치처럼 여겨지고, 자신의 쾌락을 기꺼이 채우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정결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원천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들은 몸소 가르쳐 주었다. 성性은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며, 남녀가 혼인 안에서 성적 소통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내어맡기는 것이지만, 성적 쾌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대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은 자신의 소유이기에 자신의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머물고 만다.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동정과 정결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를 접하는 이들 역시 사랑의 감정이 있고 양쪽의 동의만 있다면 이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세계적으로 미혼자들은 마음만 있다면 혼전 성관계와 혼전 동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혼인한 부부의 상당수가 이혼을 하거나 커다란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다들 정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현실에서 정결한 삶은 마치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이상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성은 인격적 관계 안에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상호 통교가 되어야 하는데,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성욕이나 성적 충동을 해소하고 충족시키는 것으로 성을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초남이 동정부부는 정결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정결할 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겉으로 볼 때 동정이란 단순히 혼인하지 않고 살거나 혼자 사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어떤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요한과 루갈다가 그랬던 것처럼 동정(정결)의 본질은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것으로 사실 그들의 삶에는 어떠한 단절과 소외도 존재하지 않았고 더욱 적극적인 상호 헌신과 끊임없는 소통이 있었다. 즉 동정부부는 성이 창피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어서 억제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름답고 엄청난 일이기에 이를 기꺼이 봉헌하였고, 이를 통하여 하느님만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천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에 그 누구보다 충실

이처럼 함께 동정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온 모습에 감탄을 하지만, 그들의 진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현세를 넘어서서 천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에서도 그 누구보다 성실하였고,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 이들의 일상 속에 고스란히 스며든 깊은 신앙과 순박한 정신을 알아갈수록, 그들이 함께 살아온 정결한 삶, 부부생활, 가정생활, 이웃과의 관계들이 모두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바로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동정부부가 이처럼 어린 나이에도 덕스럽고 신심 있는 자들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장한 환경 속에서 신앙적이고 인성적인 양성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서 빠른 속도로 가정이 해체되어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신앙과 인성을 교육하지 않거나 교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요한의 당숙이었던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 땅의 첫 순교자로 당시 신자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였으며, 지방 최고의 갑부였던 아버지 유항검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열렬한 사람으로 활발하게 신앙을 살고 전하였다. 특히 아버지 유항검이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을 전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몸소 천주교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기에, 자연스레 집안에서부터 살아 있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루갈다의 친정 집안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 집안으로, 외숙인 권일신과 권철신은 뛰어난 학식과 신심을 갖추어 널리 신앙을 전하였다. 특히 루갈다의 어머니는 헌신적인 사랑과 열렬한 신앙의 귀감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었기에, 루갈다뿐 아니라 오빠와 남동생 모두 비슷한 삶을 살다가 순교할 정도로 일가족 모두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나 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모습은 바로 초남이 가정에서의 삶이었다. 부부 관계와 자녀 출산을 염두에 두는 여느 부부들과는 달리 함께 동정을 지키며 살았지만 위아래 할 것 없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꾸준한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효심을 다하여 뜻을 받들었고 늘 기쁘게 해드렸으며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으로 대하였다.


동정부부로 산 것은 서로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다른 부부들의 귀감이 될 정도였다. 그들이 동정부부로 산다는 것은 한 사람의 지향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였고, 오로지 두 사람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삶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함께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에 있어 늘 동반자였다. 특히 순교의 여정을 걸으면서 평소 서로에 대하여 지니던 애틋한 마음과 사랑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상대방의 고통은 늘 아픔으로 남지만 그 여정을 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였다. 단순히 인간적인 이해나 배려에서 멈추지 않고, 늘 함께 기도하며 서로 간의 감정 이입과 소통을 원활하게 해 나갔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동정의 삶을 함께 지켜나갈 수 있었다. 보통의 부부들이 영위하는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지만, 이 밖의 생활에서는 여느 부부들보다 더 깊고 성숙한 부부애를 표현하면서 살았다. 즉 서로를 이해하고 믿으며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했다. 한창 피끓는 나이에 젊은 남녀가 함께 동정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상호 간의 훌륭한 인격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은 훗날의 육체적 순교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어려운 이웃에 관심 … 집안 종에게까지 예의 갖춰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전주 초남이라는 집안에서 4년가량 함께 살았지만, 동정부부의 마음은 늘 그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가족만이 삶의 전부였던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 특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관심을 지니고 살았으며 종들에게도 예의를 갖추었다. 이웃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집안에서 성장한 이들은 훗날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물려받은 가산을 서너 등분하여, 먼저 한 몫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다른 몫은 막내동생에게 후히 주어 부모님을 부탁하자고 하였다. 비록 실제 나눔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는 평소에 그만큼 상당한 자선을 베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부호가 일찍이 계획을 세워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세상에 환원하고자 한 일은 당시에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 당시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하였고 우리에게 순교자들에 관한 소중한 기록을 남겨준 다블뤼 성인이 유독 동정부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가능한 모든 교우들이 루갈다의 글을 읽도록 강하게 권했던 것은 그들의 삶 모두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150년 전 그가 한 권고와 메시지는 당시 조선의 교우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지금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도 더욱 긴박하고 요긴한 부탁이 되고 있다.

[쌍백합 44호, 2014년 봄, 김성봉 프레드릭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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