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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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김사건 안드레아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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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1326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남을 살릴수록 깊어지는 신앙


김사건 안드레아(1794-1839)의 순교 이야기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가? 누구나 그런 유혹이 생기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차라리 내가 죽어서 남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 온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큰 인내의 은총을 주시는 것 같다. 순교자 김사건 안드레아의 삶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의로운 사람은 남에게 해가 될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김사건 안드레아가 “교우들을 밀고하라”하는 상주 관아의 관장에게 한 답변이다. 그로 인해 그의 다리는 줄톱질을 당해 뼈가 허옇게 드러났지만, 그의 마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토록 기다렸던 순교를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이를 참아냈다. 걷기조차 힘든 몸으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다시 혹독한 형벌을 당한 것도 모자라 그 몸으로 전주 감영까지 끌려갔다. 포졸들이 교우들에게 빼앗은 성물들이 그가 준 것들이라 하여 대질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시 대구 감옥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장장 천 리 길을 오가며 지독한 고문과 형벌을 견뎌냈으니 가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으리라.

충청도 서산에서 태어난 김사건 안드레아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교리를 배웠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으나 천주교를 받아들인 후 재산을 버리고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로 피신하여 살았다. 그러다 1815년 을해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그의 마음이 약해져 석방된 적이 있다. 그때 순교하지 못하였던 것을 늘 마음에 품고 “참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교리 실천에 열중하였다. 특히 여러 지방을 다니며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 서적과 성물을 배포하였으며 비신자 자녀들에게 대세를 베풀었다. 1827년 정해박해 때 체포된 후 12년간이나 옥살이를 겪는 중에도 참으로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포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뒤 다시 한 번 배교를 묻는 문초에도 굴하지 않고 그해 5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45세였다.

순교자 김사건 안드레아님! 아프고 힘들지만 이웃을 살림으로써 저희 안에 인내의 열매가 자라게 빌어주소서.

[2014년 8월 3일 연중 제18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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