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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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박사의 안드레아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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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1325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효(孝),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박사의 안드레아(1792-1839)의 순교 이야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줄 모르는 자식이 누가 있겠는가? 십계명에도 부모에게 효도하라 하지 않았던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첫 번째 도리가 효(孝)임을…. 현실은 그렇지 못해 뉘우치며 통곡하는 일이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이 변해갈수록 효도하기 더 힘든 이때, 평생 부모에게 한 효행이 다른 수많은 덕행의 결실로 이어져 천국에 오른 순교자 박사의 안드레아를 만나보자.

“그 수많은 세월의 결실을 드디어 수확하게 되었으니 이 은총을 무엇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까요” 1839년 5월, 12년간의 옥살이를 하던 중 사형을 집행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기쁨에 넘쳤던 그의 말이다. 감옥생활 중에는 짚신을 만들어 생계유지를 했고 하루 한 끼 음식 외에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자리는 몹시 습기가 차고 낮아서 몸을 바로 펼 수 없었는데 그는 “이 자리는 내 아버지의 자리였고 또 암브로시오 스승의 자리였다. 나는 이 자리를 구세주께서 지정해 주신 자리로 여기고 있다. 어떻게 내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는 끝까지 아버지를 섬기며 주님의 자리를 찾았다.

충청도 홍주의 양반 집안에서 박경화 바오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덕이 높은 아버지에게 교리를 배우며 자랐다.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부모가 식사를 들지 않는 한 그도 식사하지 않았다. 신앙 때문에 자주 이주함으로써 가난했지만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떻게든 마련하였고, 부모가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귀가시간을 넘기지 않으려 칠흑 같은 밤길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는 부모의 바람에 부응하고 미리 알려드렸다.

1827년 4월 그믐에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던 그의 가족은 교우들과 함께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상주로 끌려가서 문초를 당한 후 대구감영으로 압송되었다. 법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고문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잠시라도 연로한 아버지를 떠날 수 없어 그는 관장에게 청을 하였고 그의 효심에 감동한 관장은 부자가 함께 고문을 받도록 하였다. 모진 형벌로 몸을 가눌 수 없었음에도 그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씌워진 칼을 받쳐드려 좀 더 가볍게 해드리곤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감동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순교자 박사의 안드레아님! 저희가 무엇보다 먼저 부모를 잘 받드는 자녀가 되도록 주님께 빌어주소서.

[2014년 8월 3일 연중 제18주일 대구주보 3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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