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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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마산교구의 순교자 5위: 순교자 박대식 빅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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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9 ㅣ No.1324

죽어 영원을 사는 사람들 - 마산교구의 순교자 5위


4. 순교자 박대식 빅토리노



박대식(朴大植) 순교자는 1811년(음력)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詩禮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부친(박만혁)과 형제들은(대붕, 대홍, 대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박해를 만나게 된다.

병인박해 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1868년 무진박해 때 박대식은 조카인 박수연과 함께 붙잡힌다. 그들은 김해 관아에서 삼일간 문초를 받은 뒤 대구의 경상감영(監營)으로 이송되었다.

박대식은 이곳 대구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연일 배교를 강요당하며 고문을 받았다.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렸다.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웃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박대식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조카 박수연과 함께 참수 치명한다. 당시 박수연은 예비신자 신분이었다. 박대식의 가족들은 포졸들에게 돈을 주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오게 하였다. 가족들은 시신을 확인하고는 염습(殮襲)한 뒤 선산에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인들이 반대하였다. 하는 수 없어 그의 아들 삼형제(종립, 종반, 종철)와 친척들이 마을 뒷산인 유 씨들의 문중 산에 평장(平葬)으로 매장하였다.

그 후 1956년 봄에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 부인의 묘(墓)도 이장하여 완전한 묘역으로 가꾸었다. 그리고 1966년 4월 15일에는 당시 진영본당 주임이었던 유창호(劉昌鎬 토마스) 신부의 주선으로 비석을 세워 그의 순교를 기리게 하였다. 유창호 신부는 전해지지 않는 그의 세례명을 임시로 ‘로렌죠’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박대식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마백락(馬白樂 클레멘스) 선생과 순교자의 4대손인 박영식(요아킴)의 노력으로 순교자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을 밝혀냈다(2001년 8월).

순교자 관계 사료집
병인순교자 증언록 159, 박순집 증언록 23권, 병인치명사적 18권, 하느님의 종 123(335쪽)

박대식 빅토리노 순교자 묘소
주소 :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산 30(책골)
문의 : 055)345-3226
관련주소 :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223번길 7(진례성당)

[2014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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