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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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이재행 안드레아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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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9 ㅣ No.1323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덕(德)이 있는 분을 왜 닮고 싶을까?


이재행 안드레아(1776-1839)의 순교 이야기



주위에 덕(德)이 많은 분을 알고 있는가? 그런 분을 뵈면 마음부터 푸근해진다. 누가 한 번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덕이란 좋은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좋은 행동이 나오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를 덕이 있는 사람이라 한다. 순교자 이재행 안드레아가 그런 분이었다.

대구 감영의 옥에 갇혀 있었던 이재행 안드레아에게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자신이 쓰던 물건과 옷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동료들과 함께 형장으로 나가 참수당한 후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때 이를 바라보던 죄수들과 옥졸들은 모두 슬픔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는 오랫동안 그가 보여준 모범과 수많은 덕행들 때문이었다.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가 넘어 천주교에 입교한 후 신앙생활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 후 오랫동안 이주생활을 반복하면서 가난하게 되었음에도 그는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덕행을 쌓았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견딜 줄 알았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며 사랑할 줄 알았다. 때론 모욕을 참아내는 큰 인내심을 보여주었고, 말을 하고 행동할 때는 늘 신중하였으며, 가족들을 돌보고 가르치는데도 남다른 정성을 보여주었다. 그토록 많은 빛을 발하는 그의 덕행들을 본 사람들은 찬사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경상도 순흥의 곰직이에서 체포되어 안동 관아로 끌려갔다. 참혹한 형벌에도 배교를 거부하며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였다. 대구로 이송된 뒤 더욱 혹독한 형벌에도 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감사는 달콤한 말로 여러 차례 유혹을 하였지만 그는 결코 신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안드레아는 12년 동안 동료들과 모범적인 옥중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다시 한 번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하였다. 그해 5월에 참수되자 포졸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예를 다하여 장사를 지내 줄 만큼 그와 그의 동료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순교자 이재행 안드레아님! 저희도 당신처럼 빛나는 덕행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빌어주소서.

[2014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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