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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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김세박 암브로시오의 순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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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1 ㅣ No.1317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주님의 꾐에 빠진 분


김세박 암브로시오(1761-1828)의 순교 이야기



어떻게든 돈도 더 벌고, 차도 새로 바꾸고, 승진도 잘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꾐에 빠지게 된다. 돈에 대한 꾐, 차에 대한 꾐, 승진에 대한 꾐….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꾐이 있는가? 그런 꾐을 따라 목적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꾐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렇게 꾐을 쫓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이웃도 멀어지고 하느님도 멀어져 외로운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순교자 김세박 암브로시오는 주님의 꾐에 빠졌다.

1761년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 이내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먼저 가족들에게 교리를 열심히 가르쳤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격이 포악한 아내는 그의 신앙생활을 심하게 방해하였고 자주 큰소리로 천주교에 대해 많은 욕설을 퍼부었다. 하느님에 대한 모욕을 견딜 수 없던 그는 집을 떠날 결심을 한 후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는 1791년이 지나 지방의 천주교우집으로 내려가 이 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며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서적들을 베껴 써서 교우들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를 만나 성사를 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거처가 없던 그는 이따금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고자 산 속으로 들어가 기도에 몰두하였고, 식생활을 절제하는 데 힘썼다. 항상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주로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고 어린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냉담자들을 잘 보살폈다. 특히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덕행으로 이끄는데 모범을 보였기에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였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열성이 다시 타오르게 함으로써 사방에서 그를 ‘암브로시오 스승’으로 불렀다. 신유년과 을해년 박해를 잘 피했으나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포졸들의 수색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안동 관아로 가서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알렸다. 한 달 후 그는 대구로 이송되어 잔혹한 매질과 심문을 받고 사형을 언도 받은 후 1828년 12월 옥중에서 순교하였으니 그의 나이 67세였다.

순교자 김세박 암브로시오님! 저희도 세상의 꾐이 아니라 주님의 꾐에 빠져 이미 세상에서부터 나눔의 행복을 살도록 빌어주소서.

[2014년 7월 20일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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