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30.....부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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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29 ㅣ No.1516

부활2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5,17-26             요한 3,16-21

2014. 4. 30. 등촌3

주제 : 세상을 사는 힘

힘겨운 일을 만나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탓하는 소리를 합니다. 사제의 입장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불편합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말할까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그런 질문도 잘못하면 큰일이 날 겁니다. 제가 질투하는 사람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삶에 힘겨운 일이 일어나도록 하느님은 왜 가만히 계셨느냐고 묻고 싶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소리를 듣고, 대답을 해야 할 입장이라면 어떤 대답이 가능하겠습니까? 혹시 대답하는 입장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서 항의하는 사람의 무리에 들어갈까요?

 

사람이 힘겨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힘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쓸데없이 간섭하기만 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하느님은 내 삶에 필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하느님은 거추장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소리로 대답하겠습니까?

 

오늘 독서말씀에서 들은 내용에 나오는 사도들은 과연 그 시대에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살았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살았고 그분과 헤어진 것이 요즘의 시간으로 계산해도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한다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고생을 하고 모함을 당했는데, 같은 경험이나 체험이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책임을 묻는 사람에게 해줄 말은 어떤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저 유구무언(有口無言)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텐데, 답답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힘은 사람이 예상하고 사람이 준비하는 대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루카복음사가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기록합니다. 사도들이 바랐을 법한 내용을 굳이 상상하자면, ‘자기들이 하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방해꾼들은 모두 사라지고 예수님께서 선포한 가르침을 받아들일 사람이 많은 수로 불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어떤 말이 가능하겠습니까?

 

복음의 표현을 인용하더라도,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을 보면서도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이었어야 하는데, 그런 뜻이 요즘의 우리 세상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지금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느님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움직이셔야 하는 분이라고 우리는 말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을 이상하게 비틀어서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은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따르든지 말든지 한번 외치고 사라지는 윤리나 가르침의 한 가지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신앙이라면, 신앙은 제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고, 그게 신앙의 본 모습이라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하느님은 존재의미가 없는 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잠시 함께 돌이켜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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