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20.....부활대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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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20 ㅣ No.1511

부활대축일(가해)

사도행전 10,34.37-43       콜로새서 3,1-4     요한 20,1-9

2014 4. 20. 등촌3.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은총과 영광이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기를 바랍니다. 어젯밤에 부활성야전례에 오신 분들에게는 부활인사를 두 번 인사하는 셈이 되겠지요? 좋은 일과 축하하는 일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고, 힘겨운 일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성현들의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젯밤에 기억했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빌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부활의 기쁨은 다음주일까지 팔일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날짜나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기간을 강조하는 의미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부활이란 무엇일까요?

어젯밤 미사에서 실제로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면서 낱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느냐고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낱말에 대한 의미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론으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론으로는 알아듣기 힘든 일이 실제로 우리 삶에 좋은 모습을 가진 일로서 일어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나 실천이 필요한지도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얘기를 좀 더 하다보면, 각자 개인이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소리를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젯밤 부활성야를 기억하는 미사복음에서, 부활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2명의 마리아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지고 무덤이 열리는 모습, 천사들이 나타나서 전하는 소리, 그리고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가서 전해야 할 소리로, 여인들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삶의 현장이었던 갈릴래아로 가라고 했다는 마태오복음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부활대축일에 들은 요한복음의 말씀내용도 어제 들은 것과 비슷합니다. 헌데, 등장하는 여인은 막달라지방의 출신여자 마리아 한 사람이고, 오늘 복음에는 천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부활을 세상에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는지, 예수님의 시신을 넣었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만 전합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는 표현은 실제로 영광스러울 수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위에서 죽은 예수님, 그분을 서둘러 무덤에 안장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무덤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확인하니, 무덤이 비었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게 부활이라는 신앙의 위대한 표현의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 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표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은 우리 사람들이 주도권을 갖고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렇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에게 드러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은 하느님의 일이고, 그 부활의 기쁨을 누리거나 그 부활의 기쁨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에 따라 실현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의 기쁨에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사도행전독서에 나오는 베드로도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이 그 모습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온전히 하느님께 주도권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되살아나신 그분은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빠트리기 쉬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하느님의 선택을 입을 수 있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오전(=16), 진도앞바다에서 배가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생긴 힘겨운 일, 위로가 필요하고, 슬픔을 없애기도 힘든 세상일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남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일과 오늘 기념하는 부활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고,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일들의 주체가 세상에서 그 일을 겪고 있는 힘겨움에 싸여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사도의 고백에도 나온 것처럼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려고 세우신 기준에 우리가 충족하게 살아야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세례를 통하여 현실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살겠다는 자세를 받아들인 사람들로서 세상의 것이 아니라 저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바오로사도의 말씀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부활이라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내 이웃들의 삶에도 전달되어 하느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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