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17.....성목요일 만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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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17 ㅣ No.1509

주님의 만찬 성목요일

탈출기 12,1-8.11-14        1코린토 11,23-26       요한 13,1-15

2014. 4. 17. 등촌3

주제 : 예수님의 본보기를 반복하기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사명을 다 마치기 전, 아주 특별한 일을 하신 날입니다. 사제들이 오전에는 명동성당에 모여서, 성유축성과 함께 사제직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사제서원 갱신서약예절을 했고, 이 시간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아갈 사람들에게 영원한 힘이 돼주시는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억하는 전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힘이 늘 머문다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한 일일까요? 아니면 두 번 생각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행복한 일이라고 하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고 이론으로 말하겠지만, 성실하다고 말할 신앙인들에게서조차도 그 대답을 듣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생각을 많이 하게 돼서 생기는 일일까요?

 

오늘 이 시간에 기억하는 성체성사와 그 의미를 담는 위대한 일이, 예수님의 생애가운데, 만사태평하고 평온한 시간에 제정된 것이 아니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고 그분이 보여주신 본보기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체를 올바르게 대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만, 우리는 많은 경우, 성체와 성체성사가 갖는 의미를 바르게 대하기 전에,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달리표현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하느님이 우리들 삶에 지나친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내다보면서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세우신 성사입니다. 결국에는 성체와 성체성사를 올바로 대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제로 이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성체성사의 원형이 되는 일은 오늘 구약성경, 탈출기를 통해서 들은 것처럼 히브리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에 먹었던 과월절식사입니다. 물론 그 재료가 되는 모든 내용들이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서 얻은 고기와 그 양에게서 얻은 피였지만, 신약시대를 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거행하는 미사에서 만나는 재료는 농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밀로 만든 빵과 포도로 얻는 술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설명하면, ‘질료(質料)는 달라졌는데, 형상(形相)은 같다고 하는 표현으로 설명할 일입니다.

 

성체성사를 대하는 일이 신앙인들의 삶에 언제부터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을까요? 아무런 생각이 없이 빵과 포도주를 우리가 입에 넣은 일로만 생각한다면 편하게 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이지만,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에 다다르게 하는 힘이 되는 음식으로 대할 사람이라면 보통의 준비로는 부족하다고 말할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세상일을 설명하는 한 가지 표현에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이라면, 그렇게 우리가 삶에서 맞이하는 일들이 실제 삶에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일은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히브리백성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기 전, 모든 사람들이 과월절식사에 참여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 사는 신앙인들이 오늘 전례에 다 참여하느냐고 묻는 것과도 같은 소리입니다. 또한 이집트 땅을 탈출한 무리에 모든 히브리 백성들이 합류할 수 있었는지 그 사실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현실의 삶에 적용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각자가 드러나게 하느님의 축복을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 삶에 실현되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과 그분이 베푸시는 잔치에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인간의 목숨유지에 필요한 세상의 음식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을 얻게 하는 힘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진 세상의 지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산다면, 세상에는 그렇게 차원을 달리하게 해주는 음식이나 일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힘들고, 해석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월절식사를 통하여 죽음과 노예의 땅에서 생명과 자유의 땅으로 향하게 해준 탈출기 이야기, 성찬례의 제정이야기를 전하는 바오로사도의 기억을 담은 코린토서간의 내용에 이어, 예수님은 성찬례를 올바로 대하는 사람이 세상 삶에서 드러내야 모습을 제자와 동료, 그리고 이웃의 발을 닦아주는 일을 본보기로 보여주셨습니다.

 

전례에서 기억하여 거행하는 이 일이 어떻게 하면 실제 생활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반복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성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숨을 생명의 차원으로 바꾸어 대하게 하는 이 성사는 이웃과 가까운 사람들을 기억하여 움직이는 봉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봉사와 희생의 자세를 어떤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는 이런 소리에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 기억하겠습니까?

 

오늘 성체성사를 세우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본보기를 우리가 삶에서 다시 실행할 수 있는 참된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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