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16.....성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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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15 ㅣ No.1508

 성주간 수요일

이사야 50,4-9ㄱ                 마태 26,14-25

2014. 4. 16. 등촌3

주제 : 내가 믿는 대상은? (== 하느님 / 인간자신)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산다고 할 사람은 자기 두 주먹을 믿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종교라는 표현을 이용하여, 그런 사람을 쌍수교(雙手敎) 신자/혹은/ 신봉자라고 불렀던 일이 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권장할 만한 것은 과연 자기 두 손을 믿는 것일까요? 우리가 믿음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눈에 보이는 대상,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으니, 쌍수교라는 표현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글자이기는 합니다만, 이런 표현을 써야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신앙을 비난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이나 다른 대상을 얘기하면서 믿음에 관해 말하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봅니다. 이상하다 못해, 정신이 없다거나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지 못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치도 신앙을 갖거나 신앙을 드러내는 사람 때문에, 세상에서 순수하게(?) 인간을 믿으며 살겠다는 사람이 아주 큰 손해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세상 삶에서 실패할 사람은 바로 인간을 벗어난 신앙을 가진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예언서의 독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은 철저하게 하느님을 따르는 본보기이고, 복음에 등장한 유다이스카리옷은 철저하게 인간을 믿으면서도 자기 삶은 아무것에도 꺼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본보기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같은 시간에 느끼거나 체험할 능력은 없습니다. 두 개의 사과를 양손에 쥐고 동시에 맛을 느낄 수는 없기에,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아주 불편한 존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경험을 중시한다고 말할 인간의 입장에 참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론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나는 하느님을 믿고 사는 신앙인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입니다. 헌데, 정말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그 의미는 무엇이겠느냐고 하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스승님, 그렇지요?(Not I, Rabbi, surely?)하고 유다이스카리옷은 예수님에게 장담하면서, 스승님이 동조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텐데, 과연 그는 자기의 모습을 어떻게 봤을까요?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인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사는 사람과 하느님의 뜻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구별하자고 말하면, 여러분은 자신을 어느 쪽에 두는 사람이겠습니까? 이런 선택에 후회는 과연 없을까요?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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