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06.....사순5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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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05 ㅣ No.1501

 

사순 5 주일 (가해)

에제키엘 37,12-14          로마 8,8-11          요한 11,1-45

2014. 4. 6. 등촌3

주제 : 사람에게 생명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목숨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입니다. ‘목숨이라고 내가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과 같은 것을 떠올린다면,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하는지 올바른 자세를 물으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도 중요한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설명할 방법은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목숨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만, 같거나 비슷한 대상을 신앙에서는 생명이라는 표현으로 부릅니다. 세상의 규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하고 싶은 초점을 생각하면 다른 표현으로 사용할 말입니다. 목숨과 생명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말 사전에, 목숨은 숨을 쉬며 살아있는 힘이라고 설명하고, 생명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생물로서 살아있게 하는 힘이라는 비슷한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말에서는 구별을 느낄 만큼은 아니지만 글자가 다르니, 뜻에도 분명히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므로 끝이 있을 맞이할 세상과 관련된 것을 얘기할 때는 목숨이라는 말로, 세상에 있는 우리들과 관련이 있지만 언젠가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셈해야 할 때까지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고 싶을 때는 생명이라는 표현으로 저는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제가 이런 뜻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목숨이 아닌 생명을 돌려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일에는 목숨이나 생명이나 큰 특징이 없다고 하겠지만, 언젠가 사라질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일까지 연결되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면, 우리가 그 생명을 어떠한 자세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마리아(=동생)와 마르타(=언니) 자매가 나오고 그녀들의 오빠 라자로가 등장하는 오늘 요한복음11장의 복음말씀을 편의에 따라 줄여서 읽었습니다. 세상의 삶을 마치고 이미 무덤에 든 라자로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두 자매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당신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세상에 살았던 그 몸에 생명을 돌려주는 얘기가 오늘 복음내용입니다.

 

사람에게 목숨이나 생명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둘 다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을 가리키는 대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누구에게나 있다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다릅니다.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지 그 말뜻을 설명할 시간은 아닙니다. 그건 제가 하는 설명으로 사람이 드러내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자세와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주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순간에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지연(遲延)작전을 쓰셨습니다.

 

지연(遲延)작전은 남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가 내 가치를 높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세상의 방법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목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목숨을 마친지 나흘이 넘어 라자로가 묻힌 무덤에 가신 일이나, 현실을 보고 현실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깨우쳐주려던 마르타의 제지에는 그저 믿음만 강조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을 순서대로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간의 몸에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극적인 일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기도와 청원에 응답하시니, 감사하다는 기도를 바치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하고 외친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수없이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은 순식간입니다. 좋은 일이든 힘겨운 일이든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에 우리는 겸손하게 생각하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힘겨운 일이 생겼을 때는 해결을 위한 마음자세나 기도와 더불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는 것 대신에, 푸념과 한탄으로 그 순간을 맞이하기가 쉽습니다.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어떤 것이 올바른 태도이겠습니까?

 

사람을 뺀 다른 동물들은 목숨이나 생명에 대해서 생각할 줄 모를 것입니다. 사람을 뺀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런 개념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올바르게 대하는 사람이 만드는 삶의 결과와 올바른 자세를 갖지 않은 사람이 만드는 삶의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하는지 다른 사람이 구별하는 설명이 필요할까요?

 

라자로를 살리신 기적을 전하는 말씀을 반복하고 되새기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방관자(傍觀者)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좋고, 나와 관련이 있는 말씀이라고 적극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도 좋을 일입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들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은 그 존재의 의미가 세상에만 한정하는 목숨의 차원이 될 것인지, 훗날 하느님 앞에까지 우리를 이끌고 갈 생명의 차원이 될 것인지 구별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너그러운 자세를 갖는다면, 하느님의 힘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오로사도의 이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하느님, 올바른 믿음을 갖고, 올바르게 대할 결심을 하는 저희에게,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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