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403.....사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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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4-02 ㅣ No.1499

사순 4 주간 목요일

탈출기 32,7-14              요한 5,31-47

2014. 4. 3. 등촌3

주제 : 사람이 일관성 있게 사는 것

사람이 하느님과 맞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그 이후에 하느님과 겨루어 이겨낼 수 있을까요? 얼핏 혹은 쉽게 생각하면 말이 될 것 같지 않은 질문이지만, 오늘 독서말씀을 대하면서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에게 도전해서 사람이 이길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 도전이라든지 이긴다는 낱말의 뜻이 좀 더 정확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오늘 독서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뭔가를 실행하겠다면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줏대가 약한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맞선 인간의 의지가 강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호렙산 아래, 금송아지 숭배, 우상숭배사건으로 하느님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의 원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십계명이라는 표현으로 알려주고, 그들을 특별히 대우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하느님을 만들고, 하느님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으니, 하느님의 입장에서 그들을 없애려던 것이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새로운 후손을 약속한 하느님이었지만, 그 하느님은 모세의 설득에 지고 맙니다. 그 백성을 외형상, 그대로 두기로 물러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이렇게 대했던 모세는 더 많은 히브리백성들과 가졌던 삶의 자세가 아주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을 말리려고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일관성 있는 자세는 아무나 갖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가진 자세를 버리는 것도 권장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제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앉은뱅이 치유에 관한 후속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적을 한 가지 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그 일의 의미를 강조합니다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현실적인 동물이라서 그런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해서, 그들 삶의 한계를 알고 배우게 된 우리가 그렇게 살아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삶의 자세를 잘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남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보이는데도, 내가 그 모습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남들이 잘못된 모습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보다 더 험악한 꼴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를 칭찬하는 소리는 신경을 덜 써도 좋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남이 나에 대해서 아쉬운 소리를 할 때, 내 모습은 돌아봐야 합니다. 그게 내가 더 나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은 여러분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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