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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생각하는 신앙: 생각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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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5 ㅣ No.1132

[생각하는 신앙] 생각하는 자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파리에서 유학할 때 세미나 시간에 교수님이 던진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신앙에서 내 생각이 무슨 소용인가요? 그것은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정답에 익숙했던 나에게 비판적인 생각의 문화는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한국에서 ‘정답’을 요구한다면, 그곳에서는 ‘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곳의 교수님들은 내용 전달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과연 나의 생각은 무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의 생각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어디서 듣거나 읽은 남의 말을 내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고 산 것은 아닐까?

 

 

나를 자유롭게 하는 ‘생각’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찾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좋은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탐구하는 길에서는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좋은 질문은 이미 답을 포함하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무르익은 질문은 우리를 진리에 더 가깝게 다가서도록 한다…. 내 안에 있던, 단 한 번도 의문시하지 않았던 수많은 말과 생각에 물음을 던졌습니다. 어째서 그러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것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고, 나의 생각을 조금씩 다듬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진정으로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의 생각에 물음을 던지며, 타인의 말과 생각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 세상은 남의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가 아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바라고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생각하는 신앙인’ 마리아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사람은 나자렛의 마리아였습니다(루카 1,26-38 참조).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가브리엘 천사의 이 인사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으며,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루카 복음서는 전합니다. 생각에 잠긴 마리아에게 천사는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전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두려움에 떨면서 맹목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의구심을 외면하지 않았고, 고개를 들어 질문을 던졌습니다. 생각하고 물음을 던지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말로 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맹목적인 응답이 아니라, 어둠과 의구심을 거쳐낸 신앙의 응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생각하였기에 자유로웠고, 신앙으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신앙

 

보통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성직자는, 수도자는, 교리교사는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고 믿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서 확인된 것처럼, 믿음은 놀라움과 의구심의 터널을 관통하며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하느님과 교회를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자세 또한 신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신앙과 삶에 대해 물음을 가짐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자신에게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물음을 갖기 시작하면,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과 교리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우리 삶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유아기적 신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세상 사람들의 고뇌와 물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문제, 죄와 악의 현실, 시련과 고통에 관심을 갖고, 성경을 벗 삼아 신앙의 길 위에서 진리를 갈망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놀라운 자유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침, 2018년 3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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