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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칼 라너 (7) 민감한 신학적 논쟁의 한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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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2 ㅣ No.1129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칼 라너 (7 · 끝) 민감한 신학적 논쟁의 한가운데서

 

 

라너는 인스브루크대학에서 정년을 다하고 1964년 독일 뮌헨대학교 교수로 초빙됐다. 그가 맡은 학과는 ‘그리스도교 세계관 및 종교철학과’로서 뮌헨대학교가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를 베를린에서 초빙해 개설한 학과였다. 라너가 과르디니의 후임이 된 것이다. 과르디니 신부도 긍정적이었다. 

 

라너는 ‘공의회 문헌 해설 및 그리스도교 개념에 관한 입문’을 주제로 첫 강의를 했다. 강의 내용은 철학이라기보다 신학이었다. 문제는 라너는 과르디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과르디니는 어려운 문제나 내용을 쉽게 풀이해 줬지만, 라너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통해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고자 해 난해했다. 학생들은 라너에게 과르디니를 요구했다. 이에 라너는 자신의 자리가 철학 교수직이 아님을 깨닫고, 제자인 요한 밥티스트 메츠가 교수로 있는 뮌스터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결국 여러 가지 불편한 의무조항으로 말미암아 라너는 1971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만다. 그의 대학 교수 경력은 이로써 끝을 맺었다. 라너는 이후 강단보다는 좌담회 및 라디오 그리고 TV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교황청립 국제신학위원회 회원과 독일 주교위원회 신앙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사제 독신제, 교황의 무류성

 

라너는 인공피임, 사제 독신제 폐지, 교황의 무류성 등 그 시대의 민감한 신학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인공피임을 단죄하는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을 반포하자 라너는 교도권의 가르침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양심적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너는 자유로운 성문화와 피임 허용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라너는 사제 독신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신제는 필요하다고 했다. 사제 독신제를 폐지하면 사제직이 속물적인 것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라너는 사제 독신제를 ‘십자가의 우둔함’이라고 표현하며 옹호했다.

 

1970년 한스 큉(Hans Kng) 신부가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신학적 이의를 제기했다. 한스 큉은 계시된 진리와 이 진리를 교의적인 문장으로 정리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개념으로 규정된 것은 언제나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에 계시 진리를 온전히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교의적인 문장을 보호하고 선포하는 교황에게는 신앙에 대한 무오류성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라너는 한스 큉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명백히 반대했다. 진리에 대한 결정은 언제나 개념이나 문장을 통해서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라너는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참되게 전달할 수 있다는 데에 반대한다면, 즉 하느님의 구원 진리에 대한 교회의 인식과 전달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역사 안에서 모든 인간에게 향하는 하느님의 계시가 의미 없고 자기 모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무류성의 거부는 결국 성경에 대한 부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인간이 오류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인지하고 바르게 기록하였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계시를 잘못 이해하였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라고 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주창 

 

칼 라너 하면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창한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개념으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탁월한 신학자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와 신학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에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원하며 여기에 비그리스도인들의 구원도 배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들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반성적 숙고가 없거나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따른 삶을 살고 선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고유한 운명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그들의 행하는 모든 선은 구원에 중요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 라너의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발타사르는 그의 책 「코르둘라(Cordula)」를 통해 공산당 서기와 그리스도인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익살스럽게 썼다.

 

“그리스도인 : 당신이 여기 계시군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명예롭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공산당 서기 : 무례하지 마시오. 젊은이. 나도 충분히 알고 있소. 당신들은 자멸하였군. 그래서 우리가 당신들을 박해할 필요가 없어졌어. 꺼져.”

 

발타사르는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그리스도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 개념으로는 더 이상 선교도 필요 없고 신앙도 유지할 필요도 없다. 단지 양심적으로 살기만 하면 구원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너가 여든이 되던 해인 1984년 초부터 그에게 초청 강연이 쇄도했다. 그는 2월 11~12일 프라이부르그대교구 가톨릭 학술원에서 ‘하느님의 신비 앞에 서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2월 17일 런던에 이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것이 라너의 마지막 공식 강연이었다.

 

 

주님 곁으로 

 

라너는 그해 3월 5일 인스브루크 공동체에서 생일을 맞았다. 이후 갑작스럽게 호흡 곤란과 순환계 문제를 보여 입원해 3월 30일 사망했다. 그는 4월 4일 인스브루크 예수회 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됐다. 

 

칼 라너가 저술한 논문과 책 그리고 그의 저술을 번역한 책들은 현재 4000여 편에 달했다. 그중 1976년 출간한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Grundkurs des Glaubens. Einfhrung in den Begriff des Christentums)」은 라너의 신학을 요약한 것으로 전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3월 18일, 이규성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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