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김광옥 안드레아, 김정득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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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09 ㅣ No.1359

[124위 시복 특집] 김광옥 안드레아(1741?-1801) · 김정득 베드로(?-1801)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내포 지방 예산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광옥 안드레아는 오랫동안 면장으로 일했습니다. 본디 그는 훌륭한 자질을 타고났지만, 지나치게 사나운 성격 때문에 모두 그를 꺼려했습니다. 그가 50세쯤 되었을 때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는데,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이웃이 그 사실을 알고 몹시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광옥은 날마다 교우들과 한자리에 모여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드렸고, 사순 시기마다 금식재를 지키는 등 갖가지 극기를 실천하며 천주교의 덕행을 부지런히 닦음으로써, 마침내 이전의 성격을 극복하고 어린양처럼 유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광옥의 친척으로 ‘대춘’이라고도 불리던 김정득 베드로 역시 김광옥에게서 교리를 배운 뒤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웃에게 교리를 전하였으므로, 오래지 않아 신자가 아닌 이들 사이에도 이름이 나게 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두 사람은 성물과 서적만 지닌 채, 공주 무성산으로 피신하여 교리를 실천하는데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뒤따라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김광옥은 예산으로, 김정득은 홍주로 압송되었습니다. 김광옥은 혹독한 고문과 신문 중에도 다음과 같은 말로 한결같은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모든 언약이나 위협이 소용없습니다. 다시는 제게 물어보지 마십시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따르지 않습니다. 사또께서는 임금님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저도 천주의 명령을 거역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제 대군대부(大君大父)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천주께서 저의 비밀스러운 생각과 감정과 의향을 보고 계시므로 마음속으로라도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얼마 후 김광옥은 감사의 명에 따라 김정득과 함께 청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서로를 권면하면서 형벌과 옥중의 고통을 견뎌 낸 두 사람은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8월21일에 ‘그들의 고향인 예산과 대흥으로 압송하여 참수하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예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두 사람은 그동안의 형벌로 인해 걸음을 뗄 수조차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용기와 힘으로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갈림길에 이르러 헤어질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마주 잡으며 참수 예정 시간인 이튿날 정오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광옥과 김정득 두 사람은 1801년 8월 25일, 각각 예산과 대흥에서 박해자의 칼날에 순교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9월 7일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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