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 오늘에 되살리는 순교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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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12 ㅣ No.1341

오늘에 되살리는 순교 영성



'근본으로 돌아가라'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즉위 후 집전한 첫 미사에서 오늘날 교회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세속화임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십자가라는 신앙의 영적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천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며 세속적인 가치를 앞세워도 교황이 되고, 주교, 사제가 될 수는 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는 세속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의 참된 힘은 세상과 다른 영적 힘을 잃지 않는데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지금 세상의 가치에 편승하고 윤리적인 문제들에 휩싸여 영적 진로를 잃게 되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상실한 채 세상에 동화되어가는 세속화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직면한 세속화, 영적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서 순교영성은 가장 근원적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스스로 찾은 신앙 안에서 깨닫게 된 영적 진리는 인간의 근본에 대한 납득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하느님께 속한 영적인 존재이며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참된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세속적 지혜가 아니라 복음과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제시된 영적 지혜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은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영성을 갖추게 했고 삶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향하게 되고 하느님 안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고 증거하는 순교영성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순교자의 무덤을 꾸미고 그분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 있다면 세상에 참된 진리를 증거하는 순교영성은 그 방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이러한 영적 현실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순교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순교영성은 생명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영성입니다. 즉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길을 선택하는 결단입니다. 오늘날 신앙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 퍼져가고 있는 심각한 죽음의 문화에 도전하는 전인적 투신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인의 소명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죽음의 문화를 퍼트리는 세력에 맞서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순교영성을 되찾는 일에 노력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오른다.’

살아있는 물고기만이 강물을 거슬러 오릅니다.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요, 물고기만의 생존 방식입니다. 강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흐릅니다. 시대에 따라 온갖 유행과 사상, 이념, 가치체계는 한 시대를 흐르는 강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도도하고 거침없이 시간을 가로질러 시대의 강둑을 따라 흘러갑니다. 이 거대한 시대의 강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순교영성은 신앙인으로서 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존재로 살아가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거슬러, 세상을 거슬러 하느님께로 헤엄쳐 오르던 살아있는 물고기였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아니오!”라고 대답할 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예수님은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순교영성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대답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이 결연한 선택은 자신 안에 중심이 얼마나 진실하게 존재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내 삶을 지탱하는 중심, 내 신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중심, 내 존재가 발을 디디고 있는 터전이 무엇인가의 문제입니다.

순교는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죽음을 넘어선 사건의 총체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를 모든 가치보다 귀중하게 여기고 삶의 실천적 과제로 삼을 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순교자적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첫 순교자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지금 눈앞에서 고통당하고 소외당하는 이웃을 향해 나를 내어 주는 삶, 자신을 바쳐 참된 가치를 지켜내고자 하는 고양된 인간의식에서 참된 순교영성이 자라납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증거할 차례입니다.”

1984년 한국교회의 103위 성인을 시성하는 자리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순교의 역사 위에 세워지고 순교자들의 피로 자라난 한국 천주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는 예언자적 요청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신앙 선조들이 흘린 순교의 피를 밑거름으로 탄생했고 오늘의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103위 한국 성인의 탄생은 한국교회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랑스러운 선물입니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성인을 많이 모신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전개된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절차도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성인들을 모시게 된 것은 우리 교회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신앙 속에 담긴 영성을 깊이 이해하고 영성적으로 심화시키는 작업 또한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일 것입니다.

103위 성인의 시성식 이후 한국교회가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순교영성을 이 시대에 되살리는 일에 미흡했다는 반성은 계속되어온 일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주된 원인은 순교의 의미를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되고 소개되는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순교는 영웅주의적 신앙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사건으로 머물게 되며 오늘날 일상의 삶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고통들, 희생의 순간들을 순교와 연결시킬 수 있는 현실성을 찾기가 어렵게 됩니다.

순교자들은 단순히 자신의 종교적 신념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삶과 신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보편가치를 깊이 성찰하였고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그 답을 얻었고, 그 영적인 깨달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진리를 증거한 증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순교는 사랑하기 위해 견디어내는 고통이며 사랑하기 때문에 치루어내는 희생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어려운 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큰 고통도 기쁘게 견디어 냅니다. 순교는 비참한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사랑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기쁘게 바치는 결단입니다.

순교자들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사랑을 열매맺었습니다. 순교영성은 복음이 전하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복음을 위해 ‘기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2014년 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6-7면, 김영수 헨리코 신부(천호성지 · 천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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