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대구지역 순교자: 이양등 베드로의 순교 이야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12 ㅣ No.1338

[대구지역 순교자 20위의 삶을 묵상하며 -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선(善), 공동체를 품는 그릇


이양등 베드로(?-1868)의 순교 이야기



어떤 공동체든 함께 살아가야 할 때 늘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있다. 머리가 비상하지 않더라도, 재주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다들 편안해하는 분이 있다. 오랫동안 지내왔든 처음 만났든, 누구나 선한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선한 사람에게는 다가가기도 편하고 말하기도 편하다. 세상의 자리보다 교회의 직분을 오랫동안 맡아 온 이들 가운데 선한 분들이 많은 것은 우연일까? 주님께서는 그런 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쉽게 펼치지 않으실까? 순교자 이양등 베드로도 그런 분이시다.

1866년 병인년, 박해의 바람이 경상도 하늘을 지나갈 때 울산 죽령 교우촌의 회장이었던 이양등 베드로는 열심히 수계생활을 하며 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죽령 교우촌은 기해박해 때부터 피신해 남쪽으로 내려온 교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후로 백여 명의 교우들이 함께 살던 곳이다. 본래 성품이 선량(善良)한 이 베드로 회장이었기에 교우들은 그를 편하게 대하고 따랐다. 그는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허인백 야고보 가족과 김종륜 루카 가족을 잘 맞이하여 서로 권면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꿀을 팔기 위해 다니는 동안에는 교우촌 밖 세상 이야기를 듣고, 박해 상황을 살펴 교우들이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포졸들에게 발각된 교우촌은 무너졌고, 그는 1868년 범굴에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경주로 함께 압송되는 동료들과 순교를 결심하고, 편안하면서도 강인한 마음으로 서로를 권면하였다.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는 동안 그는 천주교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는 다시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었다. 경주 진영에서보다 더 혹독한 문초와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한 뒤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런 뒤 그는 군대 지휘소가 있는 울산 장대로 끌려 나갔다. 십자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68년 9월이었다.

순교자 이양등 베드로님! 저희도 당신처럼 온유한 마음으로 공동체에 봉사하다 하느님 품에 안기도록 빌어주소서.

[2014년 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대구주보 4면, 글 대구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그림 김효애 크리스티나]



1,70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