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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69: 15세기 (4) 새 신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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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8 ㅣ No.114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69) 15세기 ④ 새 신심 운동


그리스도의 일생 묵상하며 하느님 향해 나아가다

 

 

중세 스콜라신학의 출현은 그리스도인 영성생활을 축소해 수도원 담 안에 가두거나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이론화하면서 대중들에게서 영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떠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중세 말엽에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영성신학에 문제점을 직감했던 신학자들은 지성보다 의지 중심으로 실천하는 영성생활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마침 문예부흥과 인문주의의 출현으로 인간 자체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근세에,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공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을 묵상하며 예수의 성덕을 본받고자 덕행을 훈련하는 실천적인 분위기의 영성생활을 조성하면서 ‘새 신심 운동’(Devotio Moderna)을 전개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따르자고 제안한 토마스

 

새 신심 운동의 전초는 중세 말엽에 저지대 국가들인 ‘로우랜드(Lowland)’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사변적인 신비신학을 전개했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를 극복하려 했던 얀 반 뤼스브룩(Jan van Ruusbroec, 1293~1381)은 하데위치(Hadewijch, 13세기 중반)로부터 받은 영향 등을 통해 지성보다 의지 중심의 영성생활을 추구했으며, 헤이르트 흐로테(Geert Groote, 1340~1384)와 함께 ‘공동생활 형제회’(Fratres Vitae Communis)’ 설립을 계획했습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흐로테의 제자였던 플로랑스 라드벵스(Florens Radewijns, 1350~1400)도 ‘빈데스하임 수도회(Congregatie van Windesheim)’를 설립했는데, 이 수도회는 근세 영적 쇄신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빈데스하임 수도회는 새 신심 운동의 대표 영성 작가였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Kempis, 1380~1471)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라인랜드(Rheinland)’ 인근 켐펜(Kempen) 출신이었던 토마스 아 켐피스는 청소년 시기에 네덜란드 데벤테르(Deventer)에서 수학했으며, 의전 수도회인 빈데스하임 수도회 공동체 중의 하나였던 즈볼러(Zwolle) 근처 ‘성 아녜스 산 수도원’에 1406년 입회해 거의 평생을 그곳에서 살면서 저술 활동을 했습니다.

 

토마스는 자신의 대표작 「준주성범(遵主聖範, De Imitatione Christi)」에서 수도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으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묵상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특히 토마스는 머리로 따지며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진리를 찾을 것이요, 문체를 따질 것은 아니다. 성경은 성경을 쓴 그 정신을 읽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말의 정묘함보다도 유익한 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므로 자주 해를 받는다. 그대로 읽어 나가도 좋을 것을, 알아들으려고 하고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아 유익을 얻으려면 겸손되이 읽고 순직하게 읽고 또한 성실하게 읽어라.”(「준주성범」 제1권 제5장) 따라서 토마스는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준주성범」 제1권 제1장)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또 토마스는 수도자들이 내적인 삶을 추구할 때에 훈련을 통해야만 다다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갈망은 영성생활의 근본인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달한 참된 영성생활에는 영성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토마스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플라톤사상에 따라서 초자연적인 관상을 통한 영혼의 상승으로 설명하려는 과거의 시도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강렬하게 사랑하는 인간 영혼은 세상이 덧없다는 점을 깨닫고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할 때에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토마스는 「준주성범」 제4권에서 성체성사를 강조하면서 영성체의 유익함을 비롯하여 성체 신심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간스포트.

 

 

성경을 체계적으로 묵상하라고 제안한 간스포트

 

토마스 아 켐피스의 지인이었던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 출신의 베슬 간스포트(Wessel Gansfort, 1419~1489)는 청소년 시기에 공동생활 형제회에서 지도받으며 수학했고, 1432~1449년 즈볼러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새 신심 운동에 대한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간스포트는 1449년 쾰른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및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us Claraevallensis, 1090~1153) 작품에 정통한 학자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1458년쯤 파리에 머물면서 유명론자(唯名論者, nominalist) 논란에 연루되면서 가톨릭교회 전통 교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해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간스포트는 생애 말엽에 위트레흐트(Utrecht)의 주교의 보호를 받으며 연구와 저술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수덕생활에 관한 작품을 저술하면서 묵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도자들에게 체계적으로 묵상하는 방법을 제시한 최초의 영성 작가가 되었으며, 새 신심 운동을 전개하던 교사들 가운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간스포트는 저서 「묵상의 사다리(Scala Meditatoria)」에서 단계적인 묵상 방법을 묘사했습니다. 두 개로 세분되는 첫 번째 준비 단계에서 묵상자는 묵상 주제와 관련 없는 생각들을 제거하여 묵상에 가장 적합한 상황을 조성합니다. 다음으로 열여섯 개로 세분되는 두 번째 상승 단계에서 묵상자는 자신의 지성과 판단 및 의지를 순차적으로 훈련하면서 실질적인 묵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개로 세분되는 세 번째 최종 단계에서 묵상자는 전체 묵상 과정 안에서 자신의 열정적인 염원을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묵상의 전 과정을 총정리합니다.

 

특히 첫째로 묵상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분심을 버리고 묵상 자료를 잘 선정해야 하고, 둘째로 묵상을 실천하는 단계에서는 정신과 판단력 그리고 의지를 활용하여 실제로 묵상기도를 해야 하며, 셋째로 묵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묵상기도를 통해 고무된 영혼의 열망을 온전히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수도자들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묵상함으로써 자신의 수도생활을 쇄신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으며 동시에 새 신심 운동의 영향력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새 신심 운동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예수의 공생활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 인성에 집중하는 신심을 키우고 예수의 성덕을 본받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하느님만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신을 성찰하면서 하느님을 찾는 여정 안에서 굳은 의지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따라서 새 신심 운동은 짧은 안목으로는 영성 훈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으며, 긴 안목으로는 문예부흥과 인문주의 및 종교개혁으로 발생한 이단적인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그리스도인을 미리 준비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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