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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1) 독재자에 열광하는 시대에 진리와 정의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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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1 ㅣ No.1137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1) 독재자에 열광하는 시대에 진리와 정의를 외치다

 

 

알프레드 델프 신부는 1945년 베를린에서 처형돼 순교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줄곧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리와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용기가 있다고 말합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시대의 정신 앞에 비겁할 뿐입니다. … 그런데 감옥에서 쓴 델프의 글을 읽노라면 그가 자기 자신과 싸우며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신념을 위해 살았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2006년 12월 8일 독일 만하임에서 ‘알프레드 델프 탄생 100주년 기념의 해’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통일 독일 초대 수상 헬무트 콜이 한 연설의 일부이다. 

 

일찍이 토마스 머튼은 「델프 신부의 감옥 묵상」(1962)을 번역 편찬하면서 서문에 “델프는 그가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뿐 아니라, 그의 처지가 정의롭지 못하고 부조리한 정권의 감옥 안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질서와 인간 사회 안에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위치시키고 있다는 것은 신비적 영감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고 썼다. 

 

알프레드 델프(Alfred Delp, 1907~1945)는 60년 전 베를린 플뢰첸제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돼 순교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난 60년 동안 줄곧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학교와 거리, 단체의 이름에서, 수많은 학술과 종교 행사의 주제에서, 그리고 진리와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늘 살아 있었다. 

 

알프레드 델프. 그는 시대의 증인이었다. 대부분의 독일인이 이른바 나치즘이라 부르는 국가 사회주의와 위대한 독일민족의 독재자 히틀러에게 열광하고 있을 때 “비구원과 불의, 이기적 행위와 폭력이 역사를 장식하고 있다”고 외친 예언자였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빵은 중요하다. 자유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깨지지 않는 신앙과 배반하지 않는 경배다.” 베를린 테겔 감옥에서 주님의 기도 관상을 하며 적은 의지에 찬 이 문장은 그가 실존의 뿌리까지 뽑힐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도 영혼 깊이 무엇을 갈망해야 할지를 아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음을 드러낸다. 물론 그가 이미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외치는 증인이 될 수 없었음은 당연하리라.

 

그는 투사였다. 1945년 2월 2일 교수형으로 사라졌다. “나는 독일을 믿었고, 독일의 긴박하고 어두운 시간을 넘어선 지평에서도 독일을 믿었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교만과 폭력의 삼위일체(독일민족사회당-제3 제국-독일 민족)를 믿지 않았다. 나는 이를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예수회원으로서 행한 것이다.” 그가 지상의 마지막 날에 적고 있는 그의 범죄 사실(?)이다. 그는 기도하고 식별한 것을 살기 위해 악에 저항하여 싸운 투사였다. 

 

알프레드 델프는 1907년 9월 15일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루터교 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어린 시절, 개신교 영향을 받고 성장했으나 고등학교 재학 중에 가톨릭교회에 입문했다. 그러던 어느 해 12월 8일 가톨릭 청소년 단체인 ‘새독일연맹(Neudeutscher Bund)’에서 성모기사의 정신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됐다. “우리는 아들의 모든 적을 물리치시는 승리자 당신께 우리 자신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사도단이 되겠습니다.”

 

1926년 19세의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하고 연학하는 동안에 벌써 자신의 시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특별한 성소를 보였다. 1935년 당시 유행하던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판서 「비극적 실존」을 저술했다. 여기에서 이미 그의 생애를 예견할 수 있는 기본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즉 현대인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이미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시대가 하느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발견하지 않고, 또한 시대가 어떤 인간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본질 안에 이미 하느님이 계신다. 하느님이 인간의 중심인 것이다. 그는 ‘텅 빈 중심’에서 독일 실존의 비극을 보고 있었다. 

 

1937년 사제품을 받고 뮌헨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등록하려 했으나 나치당에 의해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독일의 예수회는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치 당원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어 있었다. 델프는 대학의 학위 과정을 밟는 대신 「시대의 소리(Stimmen der Zeit)」라는 예수회 잡지사에서 편집을 맡게 된다. 이즈음의 그의 글에는 병든 영웅 ‘로렌스 장군’이 등장하는데 신을 잃어버린, 내적으로 병든 현대인을 상징하고 있다. 현대인은 로렌스 장군처럼 자신의 생활에서 완전한 자유와 책임을 향해 더 이상 성장하려 하지 않고 자유와 책임에서 벗어나 대중과 기계의 익명성으로, 장관과 장군의 세계로부터 익숙한 사병생활로 도망친다는 점에서 자신의 질병을 드러낸다. “나는 비행사로서가 아니라, 기계의 부품으로 기술에 봉사하기 위해서 비행기가 되었다.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은 장점을 지닌다.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배운다.” 델프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근원에 이르기까지 통찰해야 한다고 우리를 격려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로렌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듯이, “극을 마친 배우”나 “섣부른 지식인”일 뿐이다. 

 

1939년 「시대의 소리」는 강제 폐간됐고, 뮌헨에 있는 잡지사는 해체돼 몰수당했다. 이로써 델프 신부는 시대 비평이라는 사목에서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접촉하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된다. 1944년 그가 체포되는 날까지 뮌헨-보겐하우젠(Muenchen-Bogenhausen) 성혈성당에서 사목하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일, 김용해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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