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730.....연중제1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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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7-29 ㅣ No.1562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예레미야 15,10.16-21        마태 13,44-46

2014. 7. 30. 등촌3.

주제 : 삶은 슬픈 것인가?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쉽사리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희망을 얘기하려는 것은 좋은데, 희망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희망의 빛보다는 절망에 가깝거나 암담한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염세주의(厭世主義,=염세관을 품고 세상을 대하는 생각)라고 해서 좋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러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성경세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예언자(豫言者)는 한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글자로서의 의미만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예언자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말하면, ‘세상에 실현될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알려주고, 그렇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려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에 대한 해석을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독서말씀에서 만난,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의 탄생을 싫어라 하고 서글퍼하는 전형적인 염세주의자입니다. 그것이 전반부의 얘기이고,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인 예언자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설득하시는 내용이 후반부입니다. 두 가지 부분 중에 어디에 초점이 있겠습니까?

 

삶은 슬프게도 볼 수 있고, 기쁘게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의미라면, 슬픈 것보다는 기쁜 것이 더 낫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늘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느님을 향하여 푸념할 수도 있습니다.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생길 결과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

 

짧게 들은 복음은 지난 주일에 짤게 들은 말씀과 같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이 말씀을 대하겠습니까? 모든 것은 사람이 가진 자유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유를 드러내고 싶을 때, 그 다음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책임을 묻는 일이 없다면 참 좋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갖거나 드러낼 수 있는 욕심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고 마음이 일치할 법한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까? 재산이 있으면 다 털어넣어야 할 일이고,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내가 내겠다는 만큼만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한 만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요.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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