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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유배지에서 쓴 참회의 기록 - 최해두의 자책(自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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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06

[신앙 유산] 유배지에서 쓴 참회의 기록 : 최해두의 “자책”(自責)

 

 

시작하는 말

 

우리 나라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에로 초대를 받았다. 이 초대에 흔쾌히 응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신앙 공동체에 대한 정부 당국의 탄압은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신도들이 고통을 당했고, 죽기까지 했다. 그래서 흔히들 우리 교회사를 순교의 연속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박해 시대 우리의 교회사가 줄기찬 신앙 고백과 용감한 순교의 연속으로만 특징지어질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 교회사는 신앙 고백의 역사이며 검붉은 피에 젖은 순교의 역사였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순교한 것만은 아니었다. 체포되어 신문을 당한 신도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사에서는 순교자만을 주목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아니되며, 배교자에 대해서도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순교자의 영광뿐만 아니라 배교자의 고뇌와 회심도 우리 교회사의 일부분으로 정당히 안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배교자가 남긴 회심의 기록인 “자책”(自責)을 주목하고 이를 우리 신앙의 유산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배교란 무엇이었나?

 

배교란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존엄성과 가치를 부인하고 다른 종교나 신앙을 갖는 행위를 말한다. 이 배교의 행위가 우리 교회사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교회사의 초기 기록을 보면 생리학적 혹은 유교적 소양을 갖춘 많은 지식인들이 천주교에 입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보유론(補儒論)의 입장에서 신앙에 입문했고 신문화 수용 운동(新文化受容運動)의 논리에서 교회 창설을 비롯한 종교 운동을 전개 했다. 이들은 자신이 기반한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함이 없이 새로운 천주교 신앙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이 취했던 보유론적 자세는 전례 논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교회 당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또한 정부 당국자들도 신도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보유론에 입각한 호교의 변설(辯說)을 일축하고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이 박해의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회적으로 격리, 매장시켜 나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강요했다.

 

이와 같은 박해는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박해의 과정에서 적지 아니한 순교자와 ‘배교자’가 동시에 출현했다. 배교자들 가운데에는 보유론의 부정으로 말미암아 당연한 결과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유교적 문화 질서로 다시 복귀한 지식인 신도들도 있었다. 당시의 신도 지식인이 가지고 있던 절충적 타협적 자세가 교회와 국가로부터 더 이상 용납되지 아니하자, 많은 신도들은 신앙을 포기했던 것이다. 한편, 정부 당국의 강박에 의해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도 적지 아니했다.

 

교회 창설 직후 박해의 과정에서 이승훈 · 이벽 · 권일신 등 교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교회를 떠난 바 있다. 그리고 1801년의 박해 과정에서 권철신, 정약전, 정약용 등이 자신의 신앙을 부인했다. 이는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신앙에의 결연한 결단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까닭이었으리라. 한편 1866년 이래 병인 박해의 과정에서도 서울의 포도청에 체포되었던 신도들 가운데 신앙을 고수한 사람들은 38%였지만 나머지 62%의 신도들은 ‘배교자’가 되었다.

 

이들의 신앙 포기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서양의 문화와 그리스도교 복음을 일치시켜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동양인들은 서양의 문화와 관습과 사고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화적 독단의 비극적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상황에서 나온 ‘신앙의 포기’였다 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에 의해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사람들은 양심상의 갈등을 적지 않게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갈등을 승화시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다시 태어난 사례들을 우리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최해두(崔海斗)는 누구인가?

 

최해두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최해두는 1784년 교회 창설 직후에 영세 입교했던 신앙의 선조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처사촌인 윤유일(尹有 一)의 권고를 받아 영세했고, 정약종 · 황사영 · 최창현 등 당시 교회의 지도적인 인물들과 함께 교회 일에 참여했다. 그는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이후로 주문모 신부와도 여러 차례 만나 성사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다질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 “경세금서”(經世金書)와 같은 한문 신심 서적을 읽고 있었다. “경세금서”는 “준주성범” 혹은 “그리스도의 모범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읽히고 있는 책자이다.

 

이러한 독서를 통해 그는 토마스 아 캠피스가 정리해 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에 접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1801년 신유 교난이 일어났다. 그는 이 교난의 과정에서 경기도 여주에 사는 그의 숙부 최창주(崔昌周)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일시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를 잡으려던 관원들은 연좌율에 따라 그 대신 그의 부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최해두는 즉시 자수하였다. 그 후 그는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배교했고 그해 5월 10일에는 유배형의 선고를 받아 경상도 흥해로 귀양을 갔다. 귀양을 떠날 때 그에게는 칠순의 노친이 있었으며 젊은 처와 아들들이 있었다. 귀양 생활이 시작된 지 5~6년 후 그는 부모의 부음을 듣고서도 장례를 지내러 가지 못했다. 최해두가 얼마나 오랫동안 귀양 생활을 했는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그가 유배지에서 사망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의 아들 최영수(崔榮受)는 부친의 부음을 듣고 흥해로 가서 장례를 지낸 후 서울로 돌아와 동생 최병문(崔秉文)과 함께 살았다.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최병문은 체포되었지만 배교하여 석방되었다. 그러나 1841년 체포된 최영수는 옥중 생활을 이겨내고 순교했다.

 

 

“자책”이 쓰여진 까닭

 

최해두는 유배 생활 중 절대 고독에 잠겼다. 그는 주변으로부터 천주학 죄인으로 지목받으며 유배 생활의 간고함을 견뎌야 했다. 그는 유배 죄인으로서 세복(世福)올 잃고 세옥(世獄)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천복(天福)마저 잃고 지옥에 들어갈 수는 없음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배 생활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했고 자신의 과오를 통해 정개하여 유배 생활을 평생 동안 지속되는 순교적 삶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단시간에 목숨을 바치는 잠시 치명(暫時致命) 못지 않게 일생 치명(一生致命)도 가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최해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유배 생활의 의미를 밝히고 자신의 ‘배교’를 뉘우치며, 일생 치명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을 “자책”이란 책을 지어 서술했다. “자책”이란 ‘스스로를 꾸짖음’이란 뜻이 된다. 그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통회 정개를 통해 새로 태어난 자신의 삶과 믿음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하느님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강조했고 ‘천주 십계’를 자세히 해설하여 새 삶의 실천적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책”에서 ‘천주 십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자 했다.

 

한글로 쓰여진 이 “자책”은 한 ‘배교자’의 갈등과 고뇌를 승화시킨 우리 신앙의 유산이다.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에는 천주 십계 중 제7계까지만 서술되어 있다. 이는 이 책(필사본)의 후반부가 없어져 나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비록 완전한 형태의 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 “자책”을 통해 초기 신도들이 가지고 있던 고뇌와 신앙상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책”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엮어낸 “순교자와 증거자”에도 오늘날의 맞춤법에 따라 옮겨 수록되어 있다.

 

[경향잡지, 1990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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