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3-0317...사순5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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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3-16 ㅣ No.1346

사순 제 5 주일 (다해)

이사 43,16-21        필리피 3,8-14       요한 8,1-11

2013. 3. 17. 등촌3

주제 : 내 앞에 있는 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기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아주 많습니다. ‘일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Homo Labor)을 쓰기도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삶에 일이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는 일들 가운데는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어려운 것이야 사람이 가진 상황에 따라서 저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오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다른 사람이 한 일에 대한 비난과 단죄만큼 쉬운 일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한 사람을 죽을 사람, 죽어야 하는 사람으로 단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 한 사람도 자기들 삶의 주변에 살고 있어서 잘 아는 사람이었을 텐데, 사람이 상황에 따라 왜 그렇게 다른 판단을 하는지 그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는 삶에도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마음과 삶의 자세를 다듬어야 할 일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서(신명기 22,21ff), 죄를 짓는 일이고, 대중 앞에 끌려나와 공개처형 받아야 할 죄라고 써 있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붙잡아 온 여인을 앞에 두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옳은 일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판단을 묻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하고. 그런 질문을 여러분이 듣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겠다고 작정하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보다 월등히 쉬운 일이 못되게 살고, 못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못되게 산다는 표현을 다른 말로 하면, ‘나 혼자만 옳은 사람이고, 내가 사는 방법만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선하고 착하게 살아야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런 규정이 언제부터 사람에게 의무가 되었느냐고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도전해오는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질문하는 사람은 들려오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판단만이 진리이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정의의 기준이라고 우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삶의 기준을 제시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경험이전에 합리적인 자세에서 어떤 대답이든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며, 실천으로 따르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내가 가진 힘이 세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른 대상이나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에 그런 뜻을 심어주셨다는 계명이나 원칙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살아가는 원칙을 담아주고 알려주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이 하느님에 대해서 이사야예언자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와 거센 물속에 길을 내시는 분이고, 지쳐 쓰러진 용사와 전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또 미래에 그 하느님이 하실 일도 소개합니다. 또한 당신의 뜻을 따르는 백성들을 위하여 광야에 길을 내실 분이고, 사막에 강을 내실 분이며, 동물들도 당신을 찬양하게 만들 수 있는 분이시라고 소개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판단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세상일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 세상일만이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의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뜻은 아주 멀리에서 울리는 메아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메아리를 어떤 사람이 귀중하게 여기겠습니까? 메아리는 분명히 누군가에게서 시작된 소리가 되돌아오는 것이지만, 그 메아리가 힘이 없다면 누가 그 소리를 귀담아 듣겠습니까?

 

바오로사도가 체험한 예수님, 율법에는 죄인이었던 한 여인이 이제는 고개를 들고 살아가도록 해주신 예수님께서 드러내려고 하셨던 하느님나라의 진리는 우리 신앙인들이 실천하는 행동에 따라 힘이 달라지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 산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그런 행동은 다시 우리에게 재앙이 되어 나타날 거라는 얘기입니다.

 

한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며 예수님 앞에 둘러섰던 사람들 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하나씩 자기 갈 길로 숨어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지내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그냥 놔두어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지만,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예수님의 본보기를 실천하고 반복하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일 겁니다.

 

세상에 구원을 주신 하느님과 그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로서, 올바르게 사는 삶의 모양은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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