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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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자유의지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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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04 ㅣ No.600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자유의지 사용설명서


아름다운 계절에 그림 한 점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도미니코수도회의 수사이자 화가였던 프라 안젤리코(Fra Beati Angelico, 1400-1455년)의 ‘수태고지.’ 이 작품은 신약성경 속의 한 장면을 극적인 드라마처럼 다루고 있습니다(루카 1,26-38 참조).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받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옵니다. 그가 전하는 기쁜 소식. 이제 마리아는 아기를 갖게 되고 그 아기의 이름은 예수가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놀라면서도 천사가 전하는 소식의 뜻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이로 봤을 때 지금 우리의 여고생 정도 될까요? 하지만 어린 그녀는 담대했습니다. 인간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신앙의 모범이자 교회의 어머니로서 첫발을 내딛습니다.

마리아의 두 손은 가슴 위에 포개져 있습니다(그림 ①).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에 대한 순명과 충성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왼편 위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뻗어나옵니다(그림 ②). 그 빛 속, 비둘기 형상의 성령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그림 ③). 구원자이신 우리의 예수님은 이렇게 인간의 땅에 함께하십니다.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이 드라마의 저쪽 한편으로 빛바랜 옛 이야기가 보입니다. 슬픈 듯, 후회하는 듯…. 흐느끼고 있는 이들은 첫 인류 아담과 하와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주인공들 모습의 외딴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 쫓겨나는 중입니다(그림 ④).

태초에 그들이 약속받은 곳은 낙원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에덴의 동쪽으로 물러나 잃은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쳐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라 부릅니다.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인간의 은총 지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최상의 복을 자신의 선택으로 차버린 그들의 인생은 이제 남루해집니다. 창백한 그들의 얼굴과 옷이 그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땅에 무심하게 떨어져 있는 유혹의 도구(선악과)의 빛깔만은 선명합니다. 지금 당장 주워 먹고 싶을 만큼 탐스럽게, 도발적인 자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유혹은 화려하고 달콤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다가옵니다.


자유의지의 상반된 예시: 마리아와 하와

프라 안젤리코의 이 그림이 마음을 때리는 이유는 인간 타락의 슬픔과 구원의 기쁨을 동시에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원죄의 근원이 되는 하와의 모습과 구원의 문 역할을 하는 성모 마리아. 두 여인의 대조적인 모습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일생일대의 제안이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의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모읍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맹종한 것도 아니고, 어려움이 예견되는 상황 앞에서 약삭빠르게 몸을 빼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영적인 집중을 통해 가장 올바르게 사용합니다. 평범한 처녀였던 마리아는 그래서 성모(거룩한 어머니)가 되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는 통로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 구원사업의 큰 협조자가 되는 영광을 안습니다. 성모님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이신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뱀을 통한 유혹이 다가왔을 때 하와의 마음은 흩어집니다. 뱀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를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창세 3,5)라며 하와에게 거짓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선동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뱀의 모습과 그 근거 없는 이간에 쉽게 넘어가는 인간의 안타까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하와는 하느님에 대한 배반을 결심하고, 공범자를 만들어 안심하고 싶은 무의식 탓인지, 아담에게도 유혹의 열매 하나를 건넵니다. 검은 미소를 짓는 뱀의 얼굴이 보입니다.


자유의지의 실행과 결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중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선물, 그것은 우리들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自由意志, Liberum arbitrium)는 어떤 대상 또는 상황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순간순간, 단기적인 결과, 그리고 결국 마지막 모습이 달라집니다. 행복도 불행도 나의 업(業)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자유의지를 필요로 하는 그 선택의 순간은 때로 크기도 작기도, 가볍기도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자유의지를 써야 하는 순간에 우리 인간은 화려한 것, 달콤한 것, 나 중심적인 것에 기울어지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제대로 사용한 사람들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그림 속의 성모님이 그러하셨고, 수많은 성인들이 그러하셨고, 역사 안에서 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과감히 던진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자유의지를 선용하는 법

배신이라는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 구원 시작의 출발점이 되는 성모님의 모습, 생각해 보면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모습들입니다. 완전한 선인, 완전한 악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있고, 마음속 그 양극을 매순간 오가며 살아가는 혼란 속 가련한 존재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어느 편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는 철저하게 자신의 몫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의심하고 하느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우선할 때, 우리가 바치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 속 주옥같은 구절은 공허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참한 나약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선과 강함을 부여받았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이 선물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먹는 것은 내 몸이 되고, 내가 보는 것은 내 영혼이 됩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볼 것인가. 선택은 자유의지에서 나오고, 그 의지의 방향은 철저하게 나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담은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내 인생을 이루고, 세상을 이룹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는 희망입니다.

* 지병찬 요한 크리소스토모 - 인천교구 신부. 심곡본당 주임이며,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에서 ‘종교와 예술’을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5월호, 지병찬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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