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2-0322...목...하느님은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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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3-21 ㅣ No.1202

사순 4 주간 목요일 탈출기 32,7-14             요한 5,31-47

 

2012. 3. 22. 등촌3

주제 : 하느님은 세상에......

정의로운 사람은 정말로 세상에서 정의를 행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말만 그렇게 앞세우면서 세상에서 범하는 더 많은 잘못을 감추고 호도(糊塗)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구호에도 그런 구호가 앞섰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나고 난 역사의 판단에서는 앞의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뒤쪽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글자로 쓰면 똑같은 말도 그 강조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말로 씁니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 그 뜻을 알아내려면 여러 가지 지혜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입니다.

 

오늘 탈출기 독서의 말씀은 히브리백성이 시나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숭배사건을 일으킨 직후의 일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법을 받기 위하여 시나이산위에서 40일을 머물렀지만, 그 기간을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놓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악한 것을 얼마나 정확하고 바르게 돌이킬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모세의 기도와 청원에 굴복하신 것처럼, 히브리백성에게 당장 벌을 내리지는 않으셨습니다만, 무슨 이유 때문에 하느님이 참으셨는지 그것을 알아챈 사람은 과연 얼마일까요?

 

상황이 바뀌게 되었을 때, 그렇게 하도록 만든 사람의 능력이나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수도 있고, 옳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한다는 사회에서는 그 방법을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신앙을 먼저 생각할 세상에서 그렇게 해도 좋은지, 그렇게 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행동인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혼자 청하는 일에 ‘60만 명이 넘는 히브리 백성들 가운데서 잘못된 행동에 가담한 이들을 찾아내는 일을 그만두십니다. 무슨 의미로 우리가 이해하겠습니까?

 

선구자는 외롭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뻔히 볼 줄 아는 사람의 삶은 외로운 법입니다. 하지만 그가 삶에서 그렇게 외로운 만큼, 또 그가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물길을 돌리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느님에게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 정당한 평가가 세상의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 나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서글퍼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자기 앞가림을 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온통 세상을 다 살피시는 하느님보다는 그 시야가 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참된 삶의 기준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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