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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사도 바오로, 영성 생활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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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2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사도 바오로, 영성 생활의 모범

 

 

성녀 데레사가 좋아한 성경 인물 가운데 사도 바오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10월호 참조) 사도 바오로 역시 성녀에게는 영성 생활에서 닮아야 할 모델이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사도 바오로가 다양한 영감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성녀가 바오로에게서 본 것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이었습니다(죄인에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됨, 하느님 안에 숨은 삶, 종말론적 긴장을 간직한 삶).

 

 

죄인에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오로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외면한 채 세상 것에 빠져 있던 시절을 되새기며, 자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죄인이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 전과 후의 삶, 그 둘을 잇는 것은 바로 ‘회심’이었습니다. 학자들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성녀는 일생 동안 크게 다섯 번의 회심을 했다고 합니다.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회심을 한 셈입니다. 그런 성녀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존재의 밑바닥부터 갈아엎어지는 체험을 한 사도 바오로는 틀림없이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영혼의 성》 1궁방 1,3과 6궁방 1,5; 9,10 등에서 사도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회심 체험을 전하며 회심에 대해 얘기하곤 했습니다. 성녀는 종종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묶어 두는 죄의 상태에서 해방하여 주셨음(《자서전》 17,5)을 상기하며, 그런 주님께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두 가지 답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굳은 의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영혼의 성》 5궁방 3,11). 성녀는 바오로를 닮으라고 권고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기 마음 그윽한 곳에 너무도 두터운 친밀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간직하고 계셨기에,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자서전》 22,7).

 

 

하느님 안에 숨은 삶

 

사도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성녀 데레사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언급하였습니다. 성녀는 작품 곳곳에서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또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접하는 가운데 많은 신비 체험을 하면서 느낀 ‘혹여 악마에게 속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씻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지극히 충실하시어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악마의 속임수에 희생되는 것을 용납지 않으십니다”(《자서전》 23,15; 1코린 10,13 참조). 성녀 데레사와 사도 바오로는 모두 ‘하느님의 충실함’을 깊이 확신하고 각자의 작품에서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두 분 모두 하느님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하느님 안에서라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깊은 확신을 간직하였습니다(《자서전》 13,3; 필리 4,13 참조). 성녀는 인간의 나약함과 고통과 유혹과 죄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가르치듯,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유혹을 허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영적 보고서》 58,1; 1코린 10,13 참조). 성녀는 주님을 향한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영적 여정의 마지막인 7궁방, 즉 영적 결혼의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녀 데레사와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계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깊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서간》 161,7; 1테살 5,24).

 

 

종말론적 긴장

 

사도 바오로가 이루고자 한 궁극적 원의(願意)는 하느님을 관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녀 데레사가 일생을 통해 간절히 원한 바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옥살이를 벗어나서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갈망이 있다 합시다. 성 바오로가 지니시던 그런 갈망 말입니다. … 그는 이 갈망의 고통이 하도 심해서 이것을 감추려 애쓰다가 한동안 바보같이 된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완덕의 길》 19,11; 필리 1,23 참조). 또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 곳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초조함”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이승의 감옥살이를 견디며 살아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괴리감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 성녀는 주님과 함께 하고픈 원의를 분명히 드러내며 이 현세를 ‘감옥’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 시대 저변에 깔린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따른 표현입니다.

 

성녀는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이미지를 따르는 가운데 현세의 죽을 육신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윤리적 불확실함에 대해 전하며, “죽고 싶은 원의”(《시詩》 7,1), “자신이 온전히 해방된 상태를 보고 싶은 원의”(《자서전》 20,25; 38,5 등)를 계속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성녀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지내고 싶은 사도 바오로의 원의를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후렴구처럼 끊임없이 표현했습니다. “사노라 내 안에 아니 살며, 지극히 높은 삶 살기가 원이로다. 아, 못 죽어 죽겠음을, 내 안에 아니 살며 사노라”(《시》 1,2-4). “유배의 탄식: 나의 하느님, 당신이 계시지 않은 삶은 얼마나 슬픈지요. 당신을 뵙고 싶어 초조합니다. 당신을 뵙고자 죽고 싶습니다”(《시》 7,1). “우리 신랑께서는 우리가 감옥에 살기를 바라신다네”(《시》 30). 성녀는 이런 다양한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랑 가득한 열망’을 풍부한 색채와 함께 전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가르멜 신학자 가운데 마리 에우젠 신부는, 성녀의 평소 염원을 바탕으로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라는 책을 펴내 성녀의 영성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는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 하는 주제와 더불어 성녀의 영성을 종합하는 커다란 두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와 성녀 데레사의 주님을 향한 이 간절한 열망이 필리 1,23과 《하느님께 외침》 15번 사이에 상응하여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두 성인은 15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주님을 향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서로 잘 통하던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두 분이 동시대를 살았다면 둘도 없는 도반(道伴)이 되었을 뿐 아니라 힘을 합쳐 교회를 위해 더욱 큰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1월호(통권 464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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