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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막달레나, 성녀 데레사가 묵상한 성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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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1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막달레나, 성녀 데레사가 묵상한 성경 인물

 

 

성녀 데레사는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없던 시대의 제약을 넘어 여러 경로로 성경, 특히 신약성경을 자기 삶의 영적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성녀는 성경의 여러 인물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주님을 향한 그들의 열정을 자기 것으로 통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성녀가 영감을 받은 인물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늘 닮고 싶은 이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성녀는 작품 곳곳에서 막달레나에 대한 사랑을 공공연히 드러낼 정도로 그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도대체 막달레나의 어떤 모습이 성녀 데레사를 매료시켰을까요? 복음서를 살펴보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그분을 따른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러 복음서에서 ‘마리아’로 통칭되는 인물이 여럿 있고, 그들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구별합니다.

 

 

서로 다른 마리아를 ‘막달레나’ 안에 통합하다

 

우선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라자로의 여동생,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루카 10,38-42 참조). 예수님께서 그 집을 방문하셨을 때, 마르타는 주님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려고 분주하게 일했지만, 마리아는 그분 곁을 지켜 그를 흔히 관상의 여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리아를 일컬어 “좋은 몫을 선택”(루카 10,42)한 여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 마리아라고 회자되는 두 번째 인물은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로,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낸 여인을 말합니다(루카 8,2 참조). 마귀에게서 해방된 마리아는 그 후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따른 가장 충실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을 따랐습니다(요한 19,25 참조). 부활절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당사자이기도 합니다(요한 20,1-18 참조).

 

마리아로 일컬어지는 세 번째 인물은 바리사이파 사제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준 익명의 죄인이자, 루카 복음서가 ‘많이 사랑한 사람’(루카 7,36-50 참조)으로 소개한 여인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당시의 대중 신심을 따르는 가운데 복음서에서 마리아라고 불린 이 세 여인을 ‘막달레나’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한 사람으로 통합하여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에게 마리아는 ‘관상하는 베타니아의 여인’이자 ‘회개한 죄인’이고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준 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은 부활절 아침에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평화의 인사를 받은 그 여인이었습니다. 성녀 데레사에게 막달레나의 모습은 총체적이면서도 밀도 깊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동기가 됐습니다.

 

 

회심과 관상의 전형인 막달레나

 

무엇보다 성녀 데레사는 막달레나에게서 놀라운 ‘회심의 전형’을 보았습니다. 막달레나는 성녀 데레사가 선호한 신심 깊은 여인들의 목록에서 ‘거룩한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성녀는 회심하던 순간에 자신을 막달레나와 동일시했습니다(《자서전》 9,2 참조). 그리고 막달레나가 세속적 사랑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돌아선 사실을 바탕으로 막달레나를 사도 바오로와 대등한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 바오로와 막달레나를 보십시오. 성 바오로는 사흘이 못 가서 사랑에 병든 것이 드러났지만, 막달레나는 첫날부터 얼마나 잘 드러났습니까?”(《완덕의 길》 40,3 참조)

 

또 성녀 데레사는 막달레나에게서 관상 생활의 큰 모범을 보았습니다. 성녀는 막달레나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한 복음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여러 곳에 언급하며 예수님께서 친히 막달레나를 옹호하셨고, 모든 관상가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완덕의 길》 15,7 참조).

 

마리아 막달레나의 관상적 삶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완전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성녀는 막달레나가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사랑했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막달레나가 순교의 은혜를 받지 못한 까닭은 돌아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미 하나의 순교를 치른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여의고 나서의 그분의 한평생 … 그것은 지긋지긋한 혹형이었을 것입니다”(《영혼의 성》 7궁방 4,13). 막달레나로 하여금 십자가 아래에 서서 굳건히 머무를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사랑의 불이었습니다(《자서전》 21,7 참조).

 

또 성녀는 예수님께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신 기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성 베드로와 막달레나에게 있어 이것이 가장 큰 쓰라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치열해지고, 받은 은혜는 대단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엄위하심을 깨달았으니, 낫낫한 정이 더하여 못 견디게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영혼의 성》 6궁방 7,4). 성녀는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데 대해 상당한 경쟁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막달레나를 한편으로 밀어내고 그가 차지한 예수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오롯이 간직한 막달레나

 

그 밖에도 막달레나는 성녀 데레사가 영성 생활과 관련하여 가르친 내용의 바탕이 됐습니다. 우선 그것은 회심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과감한 결단’이고, 다음으로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죄의 상태에서 관상적 체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성녀는 막달레나를 바탕으로 관상 생활이 지닌 풍요로움을 얘기했습니다.

 

결국 성녀는 막달레나를 예수님을 지향하는 총체적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 인물로 보았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성인들의 꽃들》이라는 성인전을 통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막달레나의 전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막 여정을 시작하여 큰 고행을 실천하면서 사막에서 30년간 살았다고 합니다. 성녀는 《자서전》 22장에서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대한 사랑을 설명하면서 이런 막달레나의 전설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치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물러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어떻게든 그곳에 머물며 막달레나를 본받읍시다. 우리 영혼이 강해지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막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렇듯 성녀 데레사는 예수님을 향한 막달레나의 사랑을 늘 가슴에 간직했고, 그처럼 성심을 다해 새롭게 회심했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리고, 그 발치에 머물며 사랑의 눈길을 드리는 가운데 관상하기를 바랐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0월호(통권 463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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