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 바탕을 둔 성녀 데레사의 영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9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 바탕을 둔 성녀 데레사의 영성

 

 

이번 달부터 몇 회 동안 성녀 데레사가 어떻게 성경을 소화하고 이를 자신의 영성에 통합하여 영적 여정의 양식으로 삼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성녀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 집안 출신으로 1535년 11월 2일 아빌라의 가르멜 수녀원(통상 ‘강생 수녀원’이라 부름)에 입회한 뒤, 1537년 11월 3일 수도서원을 발했습니다. 그 후 약 20년간 가르멜 수도자로서 성심을 다해 수도 생활에 정진하였고, 특히 기도 생활에 전념하면서 영성 생활에 큰 진보를 이뤘습니다.

 

1554년 성주간에 성녀는 수녀원에 있는 ‘채찍질 당하는 예수님 상’을 보면서 하느님의 대자대비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고 한층 더 하느님께 투신하게 됩니다. 1556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영적 약혼’의 은혜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신비 체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572년에는 영성 생활의 최고봉이라 할 ‘영적 결혼’에 도달합니다.

 

이런 깊은 하느님 체험을 통해 성녀는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어떻게 갚아 드릴까 고심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종교개혁으로 위기에 빠진 가톨릭 교회를 영적으로 돕기 위해 복음 정신을 바탕으로 봉쇄된 상태에서 기도와 희생의 삶을 철저히 지키는 수녀원을 창설했습니다. 이를 ‘맨발 가르멜 수녀원’이라 합니다. 성녀는 1562년부터 선종한 해인 1582년까지 열일곱 개의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했습니다. 또 같은 영성으로 살되 학문 연구와 사도직을 통해 교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남자 맨발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했습니다. 그 첫 번째 멤버로 영성사에 길이 남을 신비신학자 ‘십자가의 성 요한’을 영입했습니다.

 

 

기도의 스승인 성녀 데레사

 

성녀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 교회의 존경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 그가 탁월한 ‘기도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성녀의 영성을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녀는 완덕을 향하는 여정과 기도의 여정이 같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영성 생활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녀의 주요 작품에 잘 드러납니다. 성녀는 자신의 생애에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고 자신의 기도 생활을 상세히 전한 《자서전》과 가르멜 수녀들에게 기도 및 영성 생활에 관한 다양한 가르침을 전한 《완덕의 길》, 자신의 영성 생활을 종합한 《영혼의 성》 등을 집필했습니다.

 

대표작 《영혼의 성》에서 성녀는 인간의 영혼을 ‘성城’에 비유하였습니다. 그 성의 중심에 하느님이 현존하시며, 성의 내면을 향해 들어가는 일곱 단계의 여정(‘일곱 개의 궁방宮房’)으로 영성 생활을 소개했습니다. 1궁방부터 3궁방까지가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는 단계라면, 4궁방부터 7궁방까지는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 가시는 단계입니다. 4궁방부터는 인간이 준비는 할 수 있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고,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나아가게 되는 초자연적 단계입니다. 성녀가 자신의 여러 작품을 통해 가르친 기도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송 기도 2. 추리 묵상 기도 3. 능동적 거둠 기도 4. 수동적 거둠 기도 5. 고요의 기도 6. 능력들의 수면 기도 7. 합일의 기도(단순 합일·영적 약혼·영적 결혼)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 바탕이 된 성경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영성을 발전시키는 데 성경을 중요한 초석으로 삼았습니다. 성녀가 살던 시대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로 인쇄 혁명이 이루어져 성경이 그전보다 많이 보급되었으며, 스페인어로 성경 번역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자주 접하였고, 자라서는 사제들의 강론과 강의를 통해 깊이 있는 성경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로 인한 위기가 고조되자 트렌토 공의회(1545-63년)는 모국어로 된 성경 읽기를 금하였습니다. 더욱이 스페인에서는 종교 재판소의 위세가 등등해서 성녀는 1559년 이후에 모국어 성경을 비롯해 문제가 될 만한 영성 서적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성녀는 오랜 세월 성경을 가까이하며 알게 된 내용, 특히 복음서를 비롯해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 담긴 이야기를 마음 깊이 새기고 이를 자신의 영적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성녀는 영성 서적들에 담긴 성경 구절을 모아 두고 이를 암기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작품을 저술하면서 자신의 신비 체험을 설명할 때 성경의 권위를 빌려 다양한 신구약 구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완덕의 길》에서 ‘기도’에 대한 전반적 주제들을 다루면서 특히 구송 기도가 갖는 탁월한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책의 후반부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주님의 기도’를 구절구절 해설했습니다. 또 다양한 신비 기도를 설명하기 위해 복음서를 비롯해 시편의 여러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 독서를 금하던 시절, 성녀가 성경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주로 ‘성무일도’였습니다. 비록 성무일도와 거기에 담긴 성경 구절이 라틴어로 쓰여 있었지만, 성녀는 그 구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적 직감으로 알아들었습니다(물론 라틴어가 스페인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알아들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절들을 대부분 암기했습니다.

 

성녀가 성경을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영적 지도 신부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신학자’라고 하면 통상 ‘성서학자’를 의미했다고 하니 많은 신학자와 교분이 두텁던 성녀는 그들에게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성녀는 언제나 성경을 가까이 하고 사랑했으며, 이를 영성 생활에 적용하려 했습니다. 단순히 성경 그 자체를 알고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 않고, 말씀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향한 깊은 체험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느님에 대한 신비 체험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경의 권위를 빌어 영적으로 식별하고 보장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녀에게 자신의 신비 체험을 이해시키는 열쇠일 뿐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일깨우는 자극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녀는 깊은 존경심을 갖고 성경을 대했기에 말씀을 잘 암기할 수 있었고, 그 말씀을 삶에서 구체화하고 내면화할 수 있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8월호(통권 461호), 윤주현 베네딕토]



1,04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