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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치유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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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8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치유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엘리사

 

 

이번 달에는 2열왕 2,19-13,21에 소개된 엘리사의 다양한 활동을 묵상하며 그의 전체 모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수넴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사

 

2열왕 4,8-37에 소개된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사는 여행 중에 자신을 늘 환대해 준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여인은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듬해에 예언대로 아들을 낳습니다(2열왕 4,8-17 참조). 아이가 자라 아버지와 함께 추수를 돕던 날, 아이는 그만 어머니의 품 안에서 죽고 맙니다. 여인은 카르멜 산에 머무르는 엘리사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고, 결국 아이는 다시 살아납니다(2열왕 4,18-37 참조).

 

이야기는 몇 장을 건너뛰어 계속 이어집니다. 엘리사는 죽기 전에 수넴 여인에게 칠 년 동안 기근이 들 것이니 그 땅을 떠나 지내라고 조언합니다. 이에 여인은 가족과 필리스티아 땅에서 지냅니다. 기근이 끝난 뒤 돌아온 여인은 이스라엘 임금에게 호소하여 엘리사와 맺은 인연으로 그동안 자기 땅에서 거둔 모든 소출을 비롯한 재산을 돌려받습니다(2열왕 8,1-6 참조).

 

 

빵의 기적을 이룬 엘리사

 

다음으로 2열왕 4,42-44에서 우리는 ‘빵의 기적’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이야기는 2열왕 4,38-41에 나오는 예언자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됩니다. 그 공동체는 당시 길갈, 베텔, 예리코에 있었는데, 상당히 가난하고 하류 계층에 속했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표징’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바로 ‘빵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은 엘리사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맏물을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라 맏물은 가장 먼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엘리사의 행동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예언자의 메시지와 신약의 복음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을 치유한 엘리사

 

2열왕 5,1-27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나병에 걸린 나아만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 임금이 총애하는 용맹한 장군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나병에 걸립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나아만 부인의 시종으로 있으면서, 나병을 엘리사에게 보여 주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시리아 임금의 친서와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 임금에게 갑니다. 그러나 그의 병을 고쳐 달라는 편지를 읽은 임금은 자기 옷을 찢으며 침통해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을 불러, 그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합니다. 너무도 단순한 주문에 화가 난 나아만은 시리아로 돌아가려 하지만 밑져야 본전 아니냐는 부하들의 말에 결국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의 나병이 깨끗하게 치유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감사의 선물을 주려 하지만,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나병을 치유한 이가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알았기에 모든 공로를 하느님께 돌립니다. 그는 오직 하느님에게서 구원이 오며, 구원은 선물로 거저 주어진다는 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마침내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조금 가져가 자기 나라에서 주님께 희생 제물을 봉헌하며 그분을 섬깁니다.

 

 

교부들의 묵상

 

교부들은 2열왕 2,19-13,21을 신약성경의 여러 구절과 비교하는 가운데, 엘리사의 여러 행적(기적, 치유 등)을 바탕으로 그를 그리스도의 예형(豫形)으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룩의 야고보는 엘리사를 모든 병자를 치유하는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인물로 보았습니다. 셀레우키아의 바실리오는 그리스도를 ‘영적 엘리사’의 선상에서 소개했습니다. 2열왕 2,19-22에서 엘리사는 소금을 갖고 예리코의 나쁜 물을 깨끗한 물로 변화시켰는데, 교부들은 여기서 강생의 신비와 세례성사의 예형을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빚을 갚지 못해 아들을 종으로 내주어야 했던 어느 가난한 과부에게 ‘기름의 기적’을 일으켜 그것을 팔아 빚을 갚도록 한 엘리사의 모습(2열왕 4,1-7 참조)에서, 교부들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기름을 풍성히 부어 죄의 종살이에 매여 살던 인류(과부)를 해방시킨(이사 50,1 참조) 그리스도의 오심(來)을 보았습니다. 또 2열왕 4,33-37에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되살린 장면에서는 치명적 죄의 무게로 인해 병들고 생명을 잃어버린 인성(人性)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예형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루카 7,11-15에서 예수님이 나인의 과부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와 연계해서 묵상했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사의 다양한 활동을 전하는 2열왕 2,19-13,21에서 ‘그리스도’의 예형을 읽어 낸 교부들의 전통에 따라 묵상하고, 엘리사에게서 수도 성소의 바탕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성모 신심을 기치로 내걸었기에 엘리사에게서 성모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바콘토르페 같은 가르멜 영성학자는 예리코의 물을 깨끗하게 만든 엘리사에게서 요르단 강에 들어가시어 세례를 받음으로써 물을 정화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과부의 기름이 풍성하게 된 이야기(2열왕 4,1-7 참조)에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읽었습니다. 또 수넴 여인의 아들이 되살아난 이야기와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가 되살아난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읽어 냈습니다.

 

〈초기 가르멜 수도승들의 규범〉 7권 8장에서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의 얼굴에 놓도록 시종 게하지에게 맡긴 지팡이(2열왕 4,29 참조)를 악에 대항해 투쟁하고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못 박기 위한 ‘신앙의 무기’(갈라 5,24 참조)로 해석했습니다. 같은 책에서 중세 수도자들은 엘리사가 보인 기적의 목적을 두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일깨우기 위함이고, 둘째는 예언자의 후예인 수도 공동체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시간(kairos)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은총을 관상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7월호(통권 460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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