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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의 마지막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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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7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의 마지막 여정

 

 

이번 달에는 엘리야의 마지막 여정인 ‘엘리사를 제자로 부르는 이야기’(1열왕 19,19-21 참조)와 ‘승천 이야기’(2열왕 2장 참조)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

 

엘리야는 활동을 마칠 무렵 자신의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열심히 밭을 가는 엘리사를 눈여겨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의 곁을 지나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줍니다. 겉옷을 걸쳐 주는 행위는 단순히 자기 물건을 선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영적 전통을 지속하도록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그에게 자신의 모든 카리스마를 나눠 준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야에게서 겉옷을 받은 엘리사는 그것이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며, 이는 엘리야를 대신해 예언자로 쓰시겠다는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러 다녀오겠다고 청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1열왕 19,20) 이 말은 문맥상 엘리사를 야단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받은 부르심이 뭔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뭔지 알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핑계만 대는 제자들(루카 9,57-62 참조)을 상기시킵니다.

 

 

엘리야의 승천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가 예언자 수업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엘리사가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커가자 엘리야는 하느님께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2열왕 2장을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마지막 여정에 따라오지 말라고 명합니다.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강을 건넌 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이 그에게 해 줄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하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의 두 몫을 자신에게 물려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스승이 곧 자신을 영원히 떠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요청에 확답을 주지 않는 대신 곧 일어나게 될 신비로운 사건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되리라고 이릅니다.

 

결국 엘리사는 하늘에서 불 말이 끄는 불 병거가 나타나 엘리야를 태워 승천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로써 엘리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두 몫의 영을 물려받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로서 영적 부성父性과 예언자적 카리스마에 참여하게 됩니다(2열왕 2,12 참조). 엘리야가 승천해서 완전히 사라지자 엘리사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두 조각으로 찢습니다. 그러고는 엘리야가 남겨 준 겉옷을 취합니다. 이 행동은 스승이 떠나간 고통을 표현하며, 이제 그가 엘리야의 영을 온전히 물려받아 엘리야와 같은 권위와 능력을 갖추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교부들의 묵상

 

1열왕 19,19-21과 2열왕 2장에 대한 교부들의 성찰은 다음 두 가지 전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곧 본문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이 지닌 영적 의미를 강조하고, 신약성경의 빛 아래서 사건이 갖는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교부들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이야기(1열왕 19,19-21 참조)를 보면서 ‘예언자의 삶을 향한 부름과 따름’이라는 영적 의미를 부각합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에게 겉옷을 받은 엘리사는 엘리야의 예언자적 영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통해 엘리사를 부르는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교부들은 이 이야기를 신약성경의 빛으로 재조명하는 가운데,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걸쳐 준 행위가 오순절에 사도들이 받은 성령의 선물을 예표한다고 해석합니다.

 

두 번째, 교부들은 2열왕 2장의 엘리야의 승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교부들은 엘리야가 승천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 대해 다양한 숙고가 있었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답을 찾았습니다.

 

첫째, 그것은 하느님께서 엘리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마음이 순수한 사람’으로 더는 사람들의 죄를 견딜 수 없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그를 대신할 영적 아들, 즉 엘리사를 지상에 남겨 두고자 하셨습니다. 둘째, 엘리야의 겸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우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기에 그를 천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셋째, 교부들은 이 사건을 하느님께 향하는 영적 상승의 여정 가운데 정점(頂點)으로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우상 숭배에 맞서 싸웠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수고를 어여삐 보시고 그가 당신 곁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사의 부름받음과 엘리야의 승천을 교부들이 가르쳐온 해석의 선상에서 묵상해 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두 인물이라는 거울에 비춰 자신의 수도 성소를 새롭게 발견하고 깊이 있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우선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야 예언자의 제자 그룹들에 대해 전하면서 그들을 가르멜 수도자의 모태가 되는 수도승으로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엘리사를 으뜸가는 제자로 여겨 그를 예언자요 수도승의 전형(典型)으로 보았습니다. 또 엘리야와 제자 예언자 그룹을 가르멜 공동체의 원형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카르멜 산에서 형성된 첫 번째 공동체로서 가르멜 수도자들의 이상(理想)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멜 수도자들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당시 겉옷을 준 행위에서 형제적 계승(繼承)을 읽어 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두 몫의 영을 받는 것을 두고 ‘관상적 삶’과 ‘활동적 삶’의 카리스마를 받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엘리사가 승천한 엘리야의 겉옷을 취한 행위를 두고는 관상적·활동적 삶에 더해 ‘신비 체험’의 선물도 받았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가르멜 수도자들은 예형론적 관점에서 엘리야의 승천을 ‘그리스도의 신비’와 대비하여 묵상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엘리야가 승천하며 엘리사에게 겉옷을 준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것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로 해석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6월호(통권 459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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