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탄 엘리야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6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탄 엘리야

 

 

이번 달에는 ‘엘리야의 하느님 체험’(1열왕 19,1-18 참조)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엘리야가 호렙 산으로 가는 여정’(1열왕 19,1-8 참조)과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건’(1열왕 19,9-18 참조)으로 나뉩니다.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

 

1열왕 19,3-5에서 우리는 목숨을 구걸하며 도피 행각을 벌이는 겁쟁이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수백 대 일로 바알 사제를 대적했던 엘리야의 기상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임금 아합과 왕비 이제벨은 엘리야가 바알 사제 수백 명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엘리야를 붙잡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쳐나가 주님께 울부짖습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 19,4). 그는 이렇게 탄식하다 잠이 듭니다. 목숨을 거두어 달라 했지만 사실 그는 살고 싶어서 비굴하게 도망쳤고, 그래서 하느님을 향한 그의 부르짖음에는 역설적이게도 목숨을 살려 달라는 간절한 애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초라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며 절망 속에서 잠듭니다.

 

‘잠’은 인간이 가장 무력해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다 잠들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완전히 바닥을 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끝에서 하느님 섭리를 체험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그를 깨우며 빵과 물을 준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인 호렙에 도착합니다. 이런 엘리야의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여정을 함축하여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도착한 호렙 산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정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시나이 산입니다. 그러기에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은 우상 숭배로 인해 파기된 계약을 복원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호렙 산에서 만난 하느님

 

1열왕 19,9-18은 엘리야에 관련된 사화 가운데 백미(白眉)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했는지, 그 체험을 통해 그동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주님에게서 파견되는지 보여 줍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 동굴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그 밤은 시간적 의미뿐 아니라 심리적·영성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물으시고 그가 대답합니다(1열왕 19,9-10 참조).

 

그 후 엘리야는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체험합니다. 강한 바람이 일고, 지진과 불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9,12)로 당신을 드러내시고, 엘리야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며 그를 파견하십니다.

 

 

교부들의 묵상

 

교부들은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인간적 · 영적 체험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실패와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교부들이 엘리야의 실패에 주목한 이유는, 이제벨의 위협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우상 숭배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것과 엘리야만이 야훼 하느님께 충실한 예언자로 남았다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위(僞) 크리소스토모 같은 경우는 여기에 한 가지 해석을 추가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에게 지나치게 냉혹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이지만 유배되고, 동시에 자신의 나약함과 완고함을 체험했습니다. 위 크리소스토모와 위 에프렘은 엘리야가 이러한 실패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반면 시로의 테오도로는 하느님께서 인자하고 온화한 음성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고 보았습니다. 나르세이는 하느님께서 친근한 벗의 음성으로 나타나신다고 했고, 가자의 프로코피오는 그것이 영(Spiritus)의 체험과 같다고 했습니다. 요한 다마세노는 이런 일련의 해석을 종합하는 가운데, 호렙 산 체험은 신비 체험으로 엘리야의 회심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는 이 체험을 통해 교만을 떨쳐버리고,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작은 이들과 더불어 형제애를 나누도록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전통적으로 가르멜 수도회 회원들은 호렙 산을 향한 엘리야의 여정과 그곳에서 한 하느님 체험을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교부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엘리야가 머무른 싸리나무에서 인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십자 나무’를 보았습니다. 또 뜨겁게 달군 돌 위에 얹힌 구운 빵에서 ‘성체’를 읽어 냈으며, 엘리야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한 데에서 공생활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40일간의 광야 체험을 읽어 냈습니다.

 

“엘리아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1열왕 19,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저는 만군의 주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Zelo, zelatus sum pro Domino Deo exercituum)”(1열왕 19,10 참조)라고 엘리야가 대답한 구절은, 가르멜 수도회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이 모토는 불타오르는 칼을 잡고 있는 팔과 더불어 수도회의 정신을 상징하는 방패 위에 걸려 있습니다. 이 문장(紋章)은 1595년 당시 가르멜 수도회 총장인 스테파노 치촐라(Stefano Chizzola) 신부에 의해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가르멜 수도회를 대표하는 공식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가르멜 수도회 총장을 역임한 힐리(K. Healy) 신부는 이 문장에 ‘관상’과 ‘활동’의 조화를 표방하는 수도회의 정신이 담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원(原) 가르멜회는 1열왕 19,9-10을 ‘사도적 활동’으로 읽은 반면, 개혁된 맨발 가르멜회는 ‘관상적 소명’ 즉 하느님 현존에 대한 신비 체험이라는 소명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맨발 가르멜 회원들은 그 말씀을 바탕으로 관상하는 삶을 추구했고, 그 길에서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소화 데레사, 성녀 에디트 슈타인, 복녀 엘리사벳 같은 관상가가 나왔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5월호(통권 458호), 윤주현 베네딕토]



96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