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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 예언자를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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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4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엘리야 예언자를 묵상하다

 

 

가르멜 영성의 정신적 시조 엘리야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정신적 시조(始祖)이자 가르멜 수도회의 창시자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수도회 창립 초기부터 가르멜 회원들은 엘리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구약성경을 통해 전해진 그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묵상하며 거기에서 많은 자양분을 얻어 왔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9세기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임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인접한 티로 왕국과 정치 · 경제 · 군사적 협정을 맺고 이스라엘 왕국의 기틀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약의 하느님이신 야훼 대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겼습니다. 아합이 거짓 평안을 보장해 주는 우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알이 주는 평화는 그 이면에 엄청난 거짓과 불의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엘리야가 걸은 여정

 

1열왕 17장은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우선 엘리야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을 택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가뭄’의 저주를 내립니다. 그 후 하느님께서 그를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인도하시고, 그는 거기에서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시 그를 시돈의 사렙타에 사는 어느 과부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과부는 먹을 것이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아들과 함께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이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대접받고 힘을 얻어 여인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자 아이를 살려냅니다. 이로써 그는 하느님의 예언자로 서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엘리야의 여정을 보살피고 인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크릿 시내로 보내시고,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거기로 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먼저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했습니다. 그 뒤 엘리야는 시돈의 사렙타로 파견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가난한 과부에게 음식을 청하고 그에게서 환대와 자비를 배워야 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아합 임금이 아니라 바로 그 가난한 과부를 통해 주님의 예언자로 인정받습니다(1열왕 17,24 참조).

 

 

엘리야에 대한 교부들의 묵상

 

이런 엘리야의 모습은 교부들에게 좋은 묵상 주제가 되었습니다. 교부들은 1열왕 17장을 두 가지 차원에서 영성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첫째, 주로 그리스 교부들(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 바실리오, 요한 다마쉐노 등)은 하느님과 엘리야 예언자의 ‘투쟁’을 강조했습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처음에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뭄에서 해방하는 일을 적잖이 내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과 엘리야의 ‘투쟁’이 일어난 무대는 엘리야가 걸은 크릿 시내에서 사렙타까지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한 교부들은 엘리야를 통해 발설된 가뭄이라는 저주가 아합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 죄에서 유래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하느님께서는 왜 엘리야를 크릿 시내로 먼저 보내시고 그 다음에야 사렙타로 보내셨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그리스 교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엄청난 죄로 인해 야기된 가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숨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이 여정을 겪으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 주로 라틴 교부들(암브로시오, 아를르의 체사레오)과 시리아 교부(에프렘)는 등장인물들을 예형론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엘리야는 그리스도를 예시(豫示)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처럼 광야에서 배고픔을 겪고 하느님에 의해 양육됐기 때문입니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고기를 가져다 준 사건은 하느님 말씀이 강생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사렙타의 과부는 교회를 예시합니다. 둘 다 신랑(그리스도)을 고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밀가루 한 줌과 기름 그리고 땔감으로 쓸 나무(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를 조금만 갖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야에게 마실 물을 주었습니다. 물은 세례를 상징합니다. 과부가 가진 기름은 병자성사, 하느님의 사랑, 영적 기쁨을 상징합니다. 밀가루는 하느님 말씀, 성체, 신앙을 상징합니다. 엘리야가 죽은 과부의 아들 위에 자기 몸을 세 번 펼친 것은 새 생명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행위를 보여 줍니다.

 

 

1열왕 17장에 대한 수덕적·신비적 차원의 해석 묵상

 

14세기경 가르멜 수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기 가르멜 수도승들의 규범>에 따르면, 가르멜의 오랜 전통은 1열왕 17장(특히 17,2-6)을 수덕적 · 신비적 전망에서 해석했습니다. 여기에서 엘리야가 크릿 시내를 향해 가는 영적 여정(1열왕 17,3)은 네 단계로 표현됐습니다. 우선 수덕적 차원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이곳을 떠남’ -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함(세속과 자신에게서 이탈해 가난하게 삶). 2단계: ‘동쪽으로 감’ - 무질서한 욕망을 포기함(하느님 현존 안에서 순명하며 삶). 3단계: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냄’ - 고독을 선택함(정결의 삶). 4단계: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 애덕 실천을 통해 죄와 결별함.

 

또 이 전통은 엘리야의 여정을 참된 자유에 이르기 위한 신비적 여정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해석했습니다. 1단계: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 지상의 보화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질식시키는 모든 원의에서 자유로워져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기 것으로 동화하기 위한 자유를 말합니다. 2단계: 더 높은 차원의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 영적 이기주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질서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그리스도의 뜻과 일치하는 가운데 성장하기 위한 자유를 말합니다. 3단계: 엘리야처럼 고요한 광야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 역시 다른 두 가지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불공평한 관계에서 벗어난 자유, 그리고 하느님을 비롯해 사람들과 더욱 참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성장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4단계: 이전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과 온전히 일치하며 살게 됩니다.

 

* 윤주현 신부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 소속으로 스페인에서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있다. 《신학적 인간학》, 《교회론》, 《은총론》, 《가르멜 총서 시리즈》 등 저서와 역서를 많이 출간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3월호(통권 456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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