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거룩한 독서와 가르멜 영성의 전통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3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거룩한 독서와 가르멜 영성의 전통

 

 

초기 가르멜 은수자들의 ‘거룩한 독서’

 

가르멜 수도회는 창립 당시부터 성경의 전통에 뿌리를 둔 공동체였습니다. 가르멜 산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초창기 회원들은 ‘성경’을 자기 삶의 근본 바탕으로 여기며 밤낮으로 성경을 묵상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가르멜 수도회 영성의 근간이 됐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원회규(原會規)’에 다음의 규범이 있습니다. “각자는 다른 정당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한, 자기 수방이나 그 근처에 머물면서 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깨어 기도할 것입니다.” 이 성경 묵상 규범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거룩한 독서’라는 형태로 가르멜 수도회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초창기 회원들은 ‘묵상’할 때 큰 소리로 성경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 기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거룩한 독서’는 가르멜 기도 전통의 바탕

 

가르멜의 초기 은수자들은 전통적으로 거룩한 독서를 위해 시편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수방에서 시편 전체를 하루에 다 낭송하는 가운데 이를 기도로 봉헌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수방에서 거룩한 독서만 한 것이 아니라, 성찬례 때 공동체가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1247년 새로 승인된 ‘원회규’에는 “주님의 법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라”는 초기 ‘원회규’의 가르침을 자세히 풀어서 권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독서에 전념하고 거룩한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다지며, 끊임없이 주님의 법을 묵상할 것이니,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입술과 마음에 차고 넘쳐서 매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가르멜의 영성 전통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은 성경에 대한 ‘거룩한 독서’를 말하며, 이를 통해 생각과 입술과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가득 차고 그것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중세의 가르멜 성서학자들의 성경 연구

 

‘거룩한 독서’ 전통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가르멜 수도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이는 가르멜 수도회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되어 도미니코회나 프란치스코회와 같은 ‘탁발 수도회’로 교회에 받아들여지면서, 교회 내 여러 사도직에 투신하는 가운데 사도직 활동의 바탕이 됐습니다. 여러 본당을 맡아 사목하면서 말씀에 대한 묵상을 바탕으로 강론과 강의를 하는가 하면 여러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4-15세기에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는 교수들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가 가르멜 회원이었으며, 당시 교회 내에 널리 읽힌 성경 주해서의 상당수가 가르멜 회원들에 의해 집필되었습니다. 이처럼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레 가르멜 학파가 형성되었으며, 성경에 대한 독특한 해석 방식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연구와 영성 생활에서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시편이었습니다. 가르멜 회원들은 시편 구절을 전례와 기도에 자주 활용하고, 특히 교부들과 수도승 전통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바탕으로 이를 개인 차원의 묵상으로 심화해 나갔습니다.

 

 

근대 가르멜 회원들의 성경 독서

 

근대로 들어와 가르멜 수도회의 ‘거룩한 독서’ 전통은 점차 ‘묵상 기도’로 바뀌어 갔습니다. 성경 역시 회원들의 영성 생활에서 점차 중요성을 잃어 갔습니다. 이는 가르멜 수도회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겪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성녀 데레사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이탈리아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같은 경우는 자신의 영성 생활 중심에 언제나 성경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느님에 대해 깊은 신비 체험을 하고 그 신비 체험을 성경을 기준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두 연인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가는 여정으로 비유하면서 이를 ‘아가’ 해설로 풀어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아가서 묵상》과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혼의 노래》가 그것입니다. 또 성녀 데레사는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히 구송 기도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완덕의 길》 후반부 전체를 할애한 가운데 신약성경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주님의 기도’를 해설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성인의 작품 곳곳에는 다양한 성경 인물이 포진되어 영적 안내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현대 가르멜 성인들의 영성의 핵심인 ‘성경’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가톨릭 교회 전체에서 성경을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 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예외는 있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와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이 그렇습니다. 두 가르멜 성인은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자기의 영적 여정을 개척한 영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경우 특히 사도 바오로 서간 가운데 1코린 12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묵상하면서 교회의 모든 지체가 되고 싶어 한 자신의 거룩한 원의에 응답하는 천상의 빛을 받게 됩니다. 이로써 성녀는 교회 안에서 심장이 되어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생명을 전해 주겠다는 자신의 성소를 발견합니다. 소화 데레사 영성의 핵심인 ‘영적 어린이의 길’은 신구약 성경의 여러 구절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얻은 결실입니다.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도 사도 바오로 서간에 대한 묵상을 바탕으로 주옥 같은 영적 소품들을 집필했으며,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이 되겠다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 소속으로 스페인에서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있다. 《신학적 인간학》, 《교회론》, 《은총론》, 《가르멜 총서 시리즈》 등 저서와 역서를 많이 출간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2월호(통권 455호), 윤주현 베네딕토]



1,18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