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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서 움튼 가르멜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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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72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서 움튼 가르멜 영성

 

 

모든 성인의 삶에는 말씀이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 예로 말씀에 터를 잡은 가르멜 영성과 가르멜 성인들의 삶에서 하느님 말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신심 깊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때는 중세 훨씬 이전, 멀리는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순수한 야훼 신앙의 근거지 가르멜 산

 

일찍이 가르멜 산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 아합과 이제벨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사제에 맞서 경합을 벌인 곳입니다. 가르멜 산 외곽에 있는 성지 ‘무라카’에서는 지금도 그 사건을 기억하며, 당시 가나안 지역의 우상들에 맞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지켜 낸 엘리야 예언자의 기상을 기립니다.

 

엘리야는 순수한 야훼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가르멜 산 중턱 동굴에 예언자 학교를 만들어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지금도 그 동굴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뿐 아니라 유다인과 이슬람 신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습니다. 매년 7월 20일 엘리야 예언자를 기념하는 축일에는 가르멜 산 일대가 세 종교의 신자들로 북적이며 큰 축제가 벌어지곤 합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가르멜 산에서 시작된 은수 생활

 

지금의 가르멜 수도회는 13세기 초, 현재 이스라엘 북부 항구 도시 하이파 일대의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모여든 유럽 십자군 기사들에 의해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이 수차례 파병되었습니다. 특히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성지가 탈환되고 그곳이 안정되자, 신심 깊은 일군의 십자군 기사들은 가르멜 산 어느 골짜기 동굴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은수자는 점점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브로카르도’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인 성 알베르토에게 공동체를 위한 수도 규칙을 만들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른바 ‘원(原)회규’를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공주(公住)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 이후 야훼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신앙을 갖고 살고자 한 은수자들은 구약 시대 내내 가르멜 산을 찾아왔습니다. 신약 시대로 들어와서도 적지 않은 은수자들이 가르멜 산에서 주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살았습니다. 가르멜 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런 영적 전통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은수자들의 시조(始祖)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 왔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시조인 엘리야 예언자

 

13세기 초 브로카르도 수사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엘리야의 후예를 자처하였습니다. 그 후로 가르멜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엘리야가 정신적 창립자로 공경받아 왔습니다. 또 가르멜의 은수자들은 엘리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광야의 선각자 세례자 요한을 이러한 영적 맥을 잇는 중요한 인물로 공경해 왔습니다. 따라서 가르멜의 영적 전통에서는 ‘엘리야’로 대변되는 예언자 정신이 수도회 카리스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가르멜 수도자의 전형(典型) 엘리사

 

엘리야에게서 시작된 가르멜 영성이 지닌 성경 전통은, 그의 직계 제자인 엘리사의 정신을 가르멜 수도자의 전형적 모델로 받아들이면서 심화되었습니다. 교부 시대로 들어와 적지 않은 교부들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는 두 예언자의 모습과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계하여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또 교부들은 두 예언자를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파견된 동정자로 여겼습니다. 중세 가르멜 수도자들은 이 점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자신들을 동정을 지켜 주님께 축성된 첫 번째 사람의 전형으로 여겼습니다. 나아가 엘리야 예언자가 가르멜 산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여 가르멜의 영적 산맥에 바탕을 마련했다면, 엘리사 예언자는 이를 바탕으로 가르멜 영성이 꽃피울 수 있도록 물을 대고 교회에 널리 퍼져나가게 한 핵심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성경의 전통을 바탕으로 시작된 가르멜 영성

 

가르멜 수도회는 성경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성경을 근간으로 영성을 꽃피운 수도회입니다. 초창기 은수자들이 지향한 목표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을 엘리야의 후예로 인식하여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을 성모님의 아들로 여겨 성모 신심을 영성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셋째, 그들은 삶의 중심에 ‘성경’을 놓고 늘 수방(修房)에 머물며 주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했습니다. 넷째, 그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수도회 설립 초기부터 가르멜 영성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전통이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가르멜 영성

 

가르멜 산의 은수자들이 모여 예루살렘 총대주교에게서 원회규를 인준받을 당시, 그들은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형제들’로 불렸습니다. 수도회 명칭에도 나와 있듯, 가르멜 수도자들은 신약의 새 하와이신 성모님에게서 완전한 성성(聖性)을 보았습니다. 성모님은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실현되도록 하느님께 순명하며 그분의 말씀을 잉태한 여인이자 성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이 점을 간파한 가르멜 수도자들은 수도회 시작부터 그분의 형제이자 아들임을 표방하여 그분의 품 안에서 영성을 발전시켰습니다. 가르멜 수도자들은 성모님을 ‘여왕(Regina)’, ‘어머니(Mater)’, ‘누이(soror)’로 고백하며, 영성 생활의 안내자요 수호자로 공경해 왔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 소속으로 스페인에서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있다. 《신학적 인간학》, 《교회론》, 《은총론》, 《가르멜 총서 시리즈》 등 저서와 역서를 많이 출간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월호(통권 454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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