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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생각하는 신앙: 완벽하지 않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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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29 ㅣ No.1171

[생각하는 신앙] 완벽하지 않은 신앙

 

 

‘생각하는 신앙’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삶에서 제기되는 ‘실존적 물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신앙에서 그 답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시련 속에서

 

살다보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대인관계에서 겪게 되는 배신과 상처, 정신적 육체적 질병, 죽음의 위협과 공포… 수많은 것이 삶을 위협합니다.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련 속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외치기도 합니다. “주여, 왜?”

 

 

시련 속에서 자라나는 신앙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다면, 하느님은 나의 삶이 평온하고 안정적일 때만 함께하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신앙은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사는 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내가 더 잘 살 때, 삶을 잘 정리하고 나서, 그때 성당에 나가야지… 이러한 생각은 시련 속에서 자신을 고립시켜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게 됩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에게만 신앙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실존적인 물음, 곧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일로 생겨나는 삶의 물음을 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과 상관합니다.

 

 

성경에서

 

성경 속 인물들도 우리의 처지와 비슷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산, 우리보다 먼저 삶과 신앙의 길을 걸은 이들입니다. 성경은 비참한 삶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더 신랄하게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치열하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상적인 신앙의 표본을 제시하며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 존재의 명과 암, 나약함과 거짓됨까지도 깊이 통찰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과 함께 걸으며 우리의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신앙에서 그 답을 찾아갈 때, 성경의 이야기는 이미 끝나버린 옛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학교

 

신앙은 질문을 던지는 법,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사는 법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한 사람, 한 신앙인으로서 가슴에 품고 살아온 여러 어려움과 고민거리와 문제를 풀어헤쳐 봅시다. 물론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한 순간에 주어질 수는 없습니다. 만약 답이 한 순간에 주어진다면 그것은 돌더러 빵이 되라고 유혹하던 사탄이 만들어놓은 환상(마태 4,3 참조)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답은 서서히 밝혀집니다. 나의 내면의 변화와 함께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침묵은 답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입니다. 기도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지향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나 자신의 변화와 성장입니다. 기도 안에서 갈망이 정화되고 무르익으며, 나는 어느덧 삶의 새로운 차원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음을 안고 항구하게 믿음을 청하며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씨름

 

창세기에 하느님과 씨름하는 야곱 이야기가 나옵니다(창세 32,23-33 참조). 신앙은 시련 속에서 가슴에 물음과 의문을 안고 살며 하느님과 하는 씨름입니다. 주님께 매달리고 궁리하고 찾으며 걸어 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이 새어 새벽이 밝았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과 씨름하면서 이미 어둡고 긴 터널의 끝자락에 온 것이며, 이전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필요한 단 한 걸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고 느껴질 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아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어쩌면 터널의 끝부분에 다다르기 위해 마지막 한 걸음만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만 있다면, 이미 그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시련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시련은 반드시 끝나기 마련입니다.

 

 

신앙인의 대열

 

시련의 다른 특징은, 이미 누군가 그것을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은 사람, 이미 그 시련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됩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시련을 넘어선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사람의 손길에 나의 삶을 맡기며, 이제 주님께 믿음을 주는 법을, 주님과 함께 하는 나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는 법을 배웁니다. 이처럼 신앙이란 누군가의 손으로부터 전달됩니다. 이제 나는 나의 뒤를 따라오는, 나와 비슷한 시련을 겪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란 시련을 이겨내며 신앙을 전수받은 이들이 주님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이끌어주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 구원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물음 특히 불의로 인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실존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웃이 겪는 삶의 문제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함께 신앙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것,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 보여준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실존적 물음을 던지며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이들인가요?

 

[외침, 2018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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