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14.....성십자가 현양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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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13 ㅣ No.1592

                            ()십자가 현양축일 [0914]

민수기 21,4-9         필리피 2,6-11      요한 3,13-17

2014. 9. 14. (주일). 이태원

주제 : 우리에게 십자가는?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도 좋고 만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하찮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원이 되었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도구가 된 십자가의 의미를 특별히 생각하는 축일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어떤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좋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는 십자가가 갖는 첫 번째 의미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을 죽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아닌 죽게 하는 도구가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세상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통치권자 입장에서 보면, 국가구조에 해가 된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을 죽게 하던 도구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때,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죽음의 도구로 대한 것은 콘스탄티누스1세 황제때까지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와중에, 사람을 죽이던 도구였던 십자가의 의미가 바뀌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의 죽음사건으로 그 의미를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십자가를 삶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받아들이실 때, 그 십자가는 죽음의 도구였고, 죽어야 할 사람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빼앗는 도구였으며,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3시간 만에 죽게 만든 도구였습니다. 그런 도구였던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시면서,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로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물론 세상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3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인도자, 모세의 지시를 따라서 이집트를 탈출했던 히브리백성들이 한 달 만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빨리 정착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마다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된 것은 그 백성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는 선택을 아주 현명하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그 결과를 함께 볼 때는 어리석은 행동이 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부분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바라보는 바로 그것이 전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백성들이 오랜 세월 전, 광야에서 겪었던 불 뱀 사건을 회상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같은 길을 갈 거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올바른 의미를 알아들으면 영광의 상징이 되겠지만, 그 전에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치욕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이런 선언은 우리가 같은 십자가를 대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원인도 됩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해야하겠습니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십자가는 더 이상 죽음을 가져오는 도구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도구는 아닙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패션의 하나로 목에 달려있는 것이 되었고, 차량 운전자의 앞에 있는 장식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십자가를 아직도 부담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과 자세 그리고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사람들이 갖는 생각이지, 신앙인으로서 가져도 좋은 태도도 아니고, 권장할 만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현양축일이 제정된 역사적인 배경을 아는 것은 세상의 지식일 뿐, 그 역사가 신앙인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들인 십자가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대단히 훌륭한 징검다리이고, 사닥다리(a ladder)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이것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교신자로서 가져야할 태도에 위배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도 올바로 자세로 신앙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효과입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한 인간이었던 예수님, 그 예수님을 다시 높이시어 구원자가 되게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살 것인지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도로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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