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07.....연중 제23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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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09 ㅣ No.1586

연중 제23 주일 (가해)

에제키엘 33,7-9       로마 13,8-10      마태 18,15-20

2014. 9. 7. 이태원

주제 : 신앙인의 길은 어려운가?

세상에 사는 일은 어떤 것이든지 쉽지 않습니다. 어렵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쉽다거나 어렵다는 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말 사전에, ‘쉽다는 말의 뜻은 어렵다는 낱말 뜻의 반대로 설명하고 있고, 어렵다는 말은 하는 일이 까다롭거나 힘에 겹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설명하는 글자는 다르지만, 의미를 알아들으려면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 말입니다.

 

삶이 어렵다는 것은 세상의 삶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신앙인의 삶에 대한 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과 신앙의 삶인, 두 가지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 구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기로 생각한다면 세상 사람의 하나보다는 신앙인으로 제대로 사는 것이 더 힘든 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구별과 다르게 생각한다면,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세상 사람의 하나로 사는 것보다 쉽다는 얘기(!!)가 될 터인데, 정말로 그렇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잘 지내거나 그들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면 된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신앙인으로 잘 사는 것이 힘들다는 얘기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결론을 생각하며 다시 묻는 것이겠지만, 어떤 것이 어렵고, 어떤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교회공동체에 속한 사람의 삶은 신비스럽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이니, 내가 모두 다 알 수도 없겠지만, 분명히 세상에 있는 교회공동체와 그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교회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소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 각색해서 현실의 감정을 담아 말하면,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고, 그게 안 되면 증인을 세워 말하고, 그것도 안 되면 교회의 이름으로 충고하고, 그래서도 안 되면 <왕따>시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가 해석한 것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요? 모름지기 하느님의 뜻을 먼저 말하는 곳에서, 이렇게 왕따라는 표현을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성당에 들어와 있는 여러분 중에, 제가 하는 이런 구분에 흥분할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웃을 향하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잘못했노라고 인정하지 않을 사람일 것이고, 내가 욕하거나 탓을 묻는 사람에게 모든 잘못의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것은 과격한 표현일까요? 예수님도 당신의 가르침에서 사랑과 희생, 자비와 봉사를 먼저 말씀하시지만, 당신의 뜻과 도저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판단에 있어서 추상(秋霜,=가을의 찬 서리)같은 칼날이 번뜩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손바닥이 두 개가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것인데, 내가 손을 휘두르는 것은 내 자유이지만, 내가 휘두르는 손에 다른 사람의 손이 부딪혀 소리가 난다면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 세상의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첫 번째 독서로 들은 에제키엘예언자의 말씀은 복음의 표현보다 조금 더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에제키엘예언자의 말을 무섭다고 여기겠습니까?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웃이 뭔가를 잘못했고, 내가 그 사람에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충고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잘못을 회개하도록 내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우리가 인정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선언은 무섭습니다. 그 사람이 잘못된 책임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를 생각하면, 하느님은 참으로 무서운 분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뜻을 우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의 본질은 남을 비난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겁을 내게 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징벌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더라도 하느님께서 세상을 대하시는 본질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 사랑을 실천할 목적으로 그런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생각을 올바로 가질 때에, 남들은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는 신앙인의 생활도 쉬워질 수 있고, 부담감을 벗어나 기쁨으로 하느님께 다가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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