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03.....연중 제2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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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09 ㅣ No.1582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3,1-9      루카 4,38-44

2014. 9. 3. 이태원. 첫새벽미사6대그레고리오성인

주제 : 내가 드러내는 세상의 모습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이든지, 자신의 모습이 뛰어난 사람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헌데 뛰어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생각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위치는 반드시 행동과 연결되는 것이겠습니까? 이론이기도 하고, 이런 질문에 대한 결론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경지는 생각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행동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것은 어떻게 드러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한쪽 편을 들게 마련입니다. 나만큼은 아주 공정해서,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조차도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드러내는 특성입니다. 그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고 했을 때, 그 방향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그의 현실생활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찬성과 반대, 온건과 진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우리가 신앙인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오늘 복음에는 정답에 해당하는 한 줄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그렇게 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권장할 만한 것입니다. 헌데 오늘 루카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마귀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이율배반입니다. 내용을 보면, 분명히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은 왜 그걸 용납하지 않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태도나 마귀의 태도에서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사람의 생황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고,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당연히 옳은 행동이라고 한다면, 신체의 상황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9월 순교자성월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습도 그와 비슷합니다. 순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고, 세상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담아, 졸지에 억지로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던 바오로와 아폴로사도는 자신들이 드러내는 모습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대하자, 자신의 현실을 얘기합니다.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내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이론인 생각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실제인 행동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봐서, 내 모습을 긍정할 수 있고, 드러내도 부끄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 앞에 합당하고 훌륭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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