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5년 제10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7-20 ㅣ No.166

2005년 제10회 농민주일 담화문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한국 천주교회가 농민주일을 제정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994년 ‘우르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의 타결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농촌을 살리기 위해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인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제정하여 전국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깨닫고 창조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로 삼아 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 간 농촌에서는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마을이나 공소에서 생산 공동체를 만들어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공동체 문화의 확산에 힘을 쏟는 한편 도시 본당에서는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생명 농산물 직매장을 설치하고 생명농업을 통하여 생산된 먹을거리를 나누며 도시와 농촌이 하나 되는 공동체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의 이러한 노력들은 수많은 뜻 있는 이들의 동참에 힘입어 농촌에는 용기와 희망이 되고 도시에는 온갖 공해와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생명 농산물로 밥상을 차리고 하느님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생명, 환경, 농업의 가치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사회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운동을 전개하는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농업, 농촌은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 농촌을 떠나는 농민은 줄을 이어 이제 전인구의 7.1%인 341만 명만이 남아서 농촌을 지키고 있으며, 그나마 60세 이상이 50%에 이르고 있습니다. 농가부채는 가구당 1993년 682만 원에서 2004년 말 현재 2,689만 원으로 4배 가까이 급증하였고 도농간의 소득 격차 또한 70%대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는 세계 식량위기를 경고하며 UN이 선포한 ‘세계 쌀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쌀 의무 수입량을 두 배로 확대하고 수입된 쌀의 시판까지 허용하는 내용으로 쌀 재협상을 종결하여 당장 금년 하반기부터는 값싼 외국쌀이 밀려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식량 자급율이 25.3%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3%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농업과 농촌의 근간이며 버팀목이자 민족의 생명줄인 쌀마저 무너진다면 농업, 농촌의 붕괴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주권과 안보,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금년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진행 중인 농산물 협상은 대폭적인 관세 및 국내보조 감축을 통해 완전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만약 수출국의 주장대로 이번 협상이 타결된다면 우리의 농업, 농촌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동안 위기에 처한 농촌, 농업문제가 단지 농민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농업, 농촌문제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할 수 없음은 물론 우리 사회와 나라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 창조사업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생명의 일꾼이며, 이 시대에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하느님 백성인 농민문제를 해결 하는 데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다운 발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단순한 생산품의 증가나 재정적 풍요로움이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공동체를 위한 방향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는 개방 일변도의 농업정책이나 쌀 생산기반을 축소하려는 농업정책에서 벗어나 국가안보와 환경, 국민건강을 생각하는 진정한 국가 발전을 염두에 둔 농업정책 마련에, 국회와 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촉구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우선적으로 우리 민족의 안전한 식량생산과 공급을 위한 ‘식량 자급율 목표치’의 법제화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적정농지의 보전, 농가 소득 안정, 농업인력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농촌 공동체의 뿌리인 중농, 소농, 가족농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사회에 생명살림의 희망을 지닌 젊은이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정부는 쌀 개방을 염두에 둔 적절한 정책을 펴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의 대처로 국고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장기적이고 효율적이며 진솔한 농민정책을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10회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가 앞장서 전개해 왔던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이 범교회적으로 전개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은 농업 ·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우리 교회의 구체적인 대안이며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동체적 연대와 책임을 통해 생명 살림을 실천하는 창조질서 보전운동이요, 도농 공동체 운동입니다. 그간의 노력을 통한 도농 직거래의 물품교류 확대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적 교류의 발전으로 든든한 도농 연대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농촌을 살리는 길이고 바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가치와 공동체성에 초점을 맞춰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므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식과 생활양식의 변화와 함께 잘못된 제도와 정책을 바꿔갈 때, 또한 농산물을 매입, 판매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순수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우리의 농업, 농촌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농민이야말로 하느님 창조질서에 순응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는 생명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지켜내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지만, 그 첫걸음은 우리들의 자그마한 나눔과 실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10회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어려울수록 도시와 농촌, 우리 모두가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서로 격려해서”(히브 10,24) 힘들고 지친 우리 농촌에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게”(이사 11,1)합시다.

 

2005년 7월 17일

제10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



52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