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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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에 물주기 - 나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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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4 ㅣ No.601

[신앙의 해 특집] 신앙에 물주기 - 나눔 편



부모는 자식이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녀인 우리들이 가까이에 있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에로 초대하시는데, 이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상황이 좋은 안 좋든 상관하지 않고 이 응답에 지속적으로 충실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 신앙이 깊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주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기도를 통해 꾸준히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성실하게 성사에 참여하게 되면, 신앙이 성장하고 하느님과의 친교도 더욱 돈독해집니다.

절친한 친구끼리는 서로 닮아갑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친교가 돈독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그분을 닮게 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아 우리 역시 사랑의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그분께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과 은총을 받고 사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과 은총에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훌륭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좋은 음식과 옷을 받는 것보다는 그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당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마르 12,29-31). 사도 요한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1요한 4,21)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신앙이 깊어지고 성장하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135)은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마침이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공허한 것이 되기에 사도 바오로는 “사랑 안에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갈라 5,6)이라고 강조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좀 더 강력하게 말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3,17)

신앙이 성숙하여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찬 사람은 가진 바를 기꺼이 나눕니다. 이런 모습을 예루살렘의 첫 신자 공동체에서 나타납니다. 그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서로 사랑하며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5) 이렇게 참된 사랑은 구체적인 나눔으로 표현됩니다.

우리 시대는 돈이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은 돈을 벌고 모으는 데에 열중하고 나누는 데에 인색합니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많아집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나눔은 이 시대의 탁월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눔은 여유 있는 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바를 쪼개서 줄 때 나눔은 더욱 빛이 납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교회의 오랜 관습대로, 쓰고 남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사목헌장」 88항)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삽니다. 그 사랑을 절실히 깨닫고 감사하는 신앙인은 이웃 사랑, 특히 사랑의 나눔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나눔을 통해서 믿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나눈다면, 그 나눔으로 도움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몹시 추운 12월의 어느 날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맨발의 어린 소년 하나가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추위에 떨면서 신발가게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측은하여 한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얘야, 뭘 그리 뚫어져라 보니?”소년이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저는 지금 하느님께 신발 한 켤레만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자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은 우선 여섯 켤레의 양말을 주문하고 세숫대야와 수건을 빌려서 가게 뒤편으로 소년을 데리고 가서 무릎을 꿇고 소년의 발을 씻긴 뒤 수건으로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 중에서 한 켤레를 소년의 발에 신겨 주었습니다. 부인은 신발도 여섯 켤레 사주었습니다. 남은 신발과 양말은 흩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서 소년의 손에 꼭 쥐어주고 어깨를 두르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부인의 손을 꼭 잡더니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소년은 눈에 물기를 가득 머금고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하느님의 부인이에요?”

우리 모두 ‘하느님의 부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하느님의 발이 되어 그분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그분이 원하시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부족하고 허물 또한 많지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는 영예를 누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그분의 축복과 구원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1582)는 우리에게 이렇게 촉구합니다. “그리스도는 몸이 없지만 당신은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지만 당신은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발이 없지만 당신은 가지고 있다. 당신의 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눈이 세상을 바라본다. 당신의 발로 그리스도는 좋은 일을 하러 나간다. 당신의 손으로 그리스도는 축복을 준다.”

현대인들은 진정성이 느껴질 때, 바꿔 말하면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엽니다. 말로써 신앙을 선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이 성숙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인도에서 평생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마더 데레사(+1997)나, 톤즈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다가 간 이태석 신부(+2010)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다고 외치면서 그와는 정반대로 사는 모습, 자기 혼자만 구원받을 것처럼 우쭐거리고, 무신론자나 다른 신앙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교회를 멀리하게 만듭니다.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 신앙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유언처럼 남기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평신도, 제42호(2013년 겨울),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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